공연장 입구로 들어서면 무대 양 옆으로 설치된 제정 로마 시대의 조각상들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관객을 맞이한다. 조각상들이 받쳐 든 큰 기둥이 무대 가운데 상단에 위치하며 압도적인 규모를 과시한다. 뮤지컬 ‘벤허’는 드라마틱한 요소와 함께 로마 시대의 완벽한 재현으로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벤허’는 미국의 법률가이자 소설가인 루 월러스의 1880년 베스트셀러 소설을 각색한 창작 뮤지컬로 유다 벤허(유준상·박은태·카이)라는 한 남성의 삶을 통해 고난과 역경, 사랑과 헌신 등 숭고한 인간적인 이야기를 완성도 높게 담아냈다.
이번 작품은 대극장 창작 뮤지컬 최초로 일본에 라이선스로 수출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연출한 왕용범 연출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그동안 ‘프랑켄슈타인’ 등 여러 흥행작에서 선보였던 드라마틱한 연출 기법이 ‘벤허’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려질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번 ‘벤허’ 역시 왕 연출의 섬세한 기법이 빛을 발했다. 장대한 역사의 흐름에 따른 서사를 자연스럽게 표현한 동시에 주인공 벤허의 고된 삶을 ‘인간’이란 키워드를 주제로 유려하게 풀어냈다. 벤허의 개인적인 고뇌가 담담히 묻어나면서 뮤지컬보다는 오히려 연극적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스토리 구성 못지않게 공연의 완성도를 높인 것은 무대 세트다. 배의 내부를 형상화한 구조물과 실물 크기의 말 전차 모형은 비록 원작 영화의 스케일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무대란 제한된 공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특수 효과였다. 특히, 홀로그램과 후면 스크린은 이런 특수 장치가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게끔 했다.
앙상블 배우들의 군무도 훌륭했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로마 병사 복장과 함께 선이 굵고 각이 살아있는 강렬한 군무로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군더더기 없이 탄탄하게 관리된 몸매는 이번 작품에 임하는 배우들의 자세가 얼마나 진지한지 보여줬다.
벤허가 부르는 ‘희망은 어디에’ 메셀라의 ‘나 메셀라’ 등은 비장미가 넘쳤다. 고음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곡이었지만 배우 유준상과 민우혁은 어려움 없이 소화해냈다. 에스더가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그리운 땅’과 벤허와 에스더의 이중창 ‘카타콤의 빛’은 무거운 분위기를 아름답게 전환해 주기도 했다. 공연은 10월2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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