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上海)에서 10년 이상 장기 체류하며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끌고 있는 한국의 경제인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대다수가 자수성가했음을 알게 된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부터 2010년까지 중국 국민총생산(GDP)이 연평균 12% 정도 성장했으니, ‘무엇을 해도 되는 시기’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실패한 사람도 꽤 많이 있었다. 따라서 그 성공의 이유를 도출하기 위해 여러 차례 깊은 대화를 시도하면 ‘개인 노력’ 이외에 그나마 쉽게 드러나는 요인들이 바로 부동산과 배우자 효과다.
즉, 두세 차례에 걸쳐 심층 인터뷰를 해보면 의외로 많은 분들이 부동산 수익을 통해 ‘위기’를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예를 들어 "1~2년 간 사업이 어려웠던 시기에 가족 분들도 많이 힘들어하지 않았는가"라고 질문을 했는데, 그 대답은 놀랍게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였다.
부동산 수익이 사업 성공과 ‘인과 관계’로 연결될 수 없지만, 대신 사업 실패를 막는 중요한 요인이었던 셈이다. 상하이 아파트 1개를 매도하면 그 수익으로 생활비, 사업 유지비 심지어 자녀 교육비까지 충당하며 몇 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상하이 아파트 가격이 15년 동안 평균 15~20배 정도 올랐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도 경제 활동에 몰두했던 시기에 어떻게 부동산 투자까지 챙길 수 있었는지에 대해 좀 더 파고 들어가 보면, ‘배우자 효과’가 드러난다.
일례로 남편이 회사 생활에 온전히 시간을 투여해 생활비를 벌고 있을 때, 아내 쪽은 소자본을 굴려 오히려 막대한 부동산 자본을 축적했다. 심지어 아내들은 친구들과 함께 ‘동업자 집단’을 꾸려 구매력을 높인 뒤, 더 큰 수익을 남겼다는 것이다.
조금 예외적인 사례가 ‘중국인 배우자 효과’다. 일부 한국 경제인들은 십수년 전 ‘어떻게 중국인과 결혼할 수 있느냐’는 가족과 친구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힘’에 의지해 어렵게 결혼에 골인했다.
당시만하더라도 상하이에서는 ‘한국인 프리미엄’이 작용했었기 때문에 학력, 직업, 집안까지 좋은 중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은 결혼 후 일종의 ‘특권’까지 얻게 된다. 한국처럼 중국에서도 외국인이 사업 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엄격하게 구분되는데, 이들은 ‘중국인 배우자’ 명의로 중국인 사업 영역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당시로서는 세련되지 못했던’ 중국인 경쟁자를 쉽게 따돌리며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현재 상하이 아파트 가격은 3.3㎡ 당 약 2000만원으로 서울과 비슷한 편이다. 그러나 상하이시 면적(약 6300㎢)은 서울시 면적(약 600㎢)의 10배 이상이고, 상하이 인구도 약 2400만명으로 서울의 2.4배 정도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들을 감안했을 때 ‘도시’ 상하이 아파트 가격은 서울 아파트 가격보다 상당히 높게 형성돼 있다. 현재 상하이에서 ‘한국인 프리미엄’은 거의 사라졌다.
이제 중국 경제성장률도 6%대에 머물고 있으니, 과거처럼 한국 경제인들이 중국 제1의 경제도시 상하이에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일으키고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광활하다. 1선 도시 상하이를 벗어나면 2선 도시는 물론 3선 도시에서의 기회도 열려있다.
그 곳에서는 ‘한국인 프리미엄’이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된다 전제가 깔렸을 때의 얘기다.
어쨌든 상하이 한국 경제인들이 어떻게 상하이에서 자수성가했고, 또 사업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그들의 ‘진짜 대답’이 남아 있다. 2년 이상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종합해보면, 의외로 매우 소박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누구도 일부러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경제인들은 주변의 일반 중국인들과 인간적 관계를 맺어왔고 가족 간에도 활발한 교류를 해왔다고 한다.
결국 이 인간관계가 모든 것을 결정해온 셈이다. 이것이 그들을 중국에 계속 붙잡아두는 이유 중 하나다.
왜냐하면 해결하기 어려운 일에 봉착하면, 결국 깊이 교제해 온 중국인들이 마치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누구도 이 ‘인간적 관계’를 ‘관시(關係)’라는 저급한 용어와 연관 짓지 않았다는데 있다. 이와 관련해 한 한국 경제인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한국인들은 꼭 ‘일’만 터지면 밥 먹자고 합니다. 평소에 연락이 없던 한국인이 밥을 먹자고 하면 일부러 경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일이 없을 때 같이 밥을 먹고, 진짜 ‘일’이 터지면 터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한·중 교류는 수교 25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중국하면 ‘관시’를 떠올렸고, 그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제 다가올 한·중 수교 50주년은 ‘관시’가 아니라 ‘인간적 관계’의 중요성을 회고하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