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방중으로 국제사회의 시선이 베이징으로 집중됐다.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을 내세운 미국의 스트롱맨과 최근 막을 내린 중국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확인하고 ‘시진핑 시대’를 예고한 중국 스트롱맨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중국 국무원 직속 통신사인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은 3일 “신(新)시대 중·미관계가 국제사회의 핵심이슈가 됐다”고 표현했다.
올 들어 미국과 중국은 경제·통상무역은 물론 군사, 북핵 등 주요 이슈에서 날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특히 통상무역, 북핵 등에서의 갈등이 첨예하다. 주로 미국이 이 두 가지 카드로 중국을 압박하고 중국은 관영언론 등을 통해 거세게 반발하는 양상이다.
그 속에서도 양국 정상은 소통하고 타협점을 찾았다. 올 4월 시 주석이 미국을 방문했고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도 만났다. 두 정상의 만남을 의미하는 '시터후이(習特會)'만 이번이 올해 3번째다. 8차례 통화를 했고 수 차례 전보를 나눴다.
이처럼 복잡하면서도 같은 패턴을 반복해온 올해 미·중관계의 흐름을 중국의 속내를 반영하는 환구시보 등 관영언론 논평을 통해 되짚어본다.
◇ 취임 앞둔 트럼프, 견제하는 미국과 중국
# “외교는 어린애 장난이 아니며 비즈니스 수단도 아니다. 트위터 발언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라 생각하는 듯 하다” (신화통신, 1월 )
# “트럼프가 북한이 핵 포기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중국 때문이라고 생떼를 쓰고 있다. 중국의 부상이 미국 덕분이라니 중화민족을 너무 얕보는 것 아니냐, 아메리카합중국이 역사라는 우주 속 지나가는 유성일 수 있다” (환구시보, 1월 )
2017년 새해 시작과 함께 미·중 양국의 줄다리기는 시작됐다.
도화선은 북한이었다. 1월 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이 이미 최종단계에 도달했다”고 밝혔고 이에 트럼프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트위터를 통해 “그런 일은 없다”며 “중국이 미국과 무역에서 거액을 가져가면 북핵 해결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고 중국을 비판했다.
이에 중국 관영언론은 일제히 반발했다. 환구시보는 “한반도 등 동아시아 정세에 관심이 있다면 취임 후에 이곳으로 와 마음대로 해보라”며 절대 밀리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다.
# “알리바바는 중국의 ‘인터넷 플러스(+)’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중국 사회 변혁을 이끄는 핵심동력으로 최근 해외 시장 확대와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두고 있다. ”(환구시보, 1월 )
줄을 당기기만 하지는 않았다. 중국 정부 인사가 아닌 기업인이 움직였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1월 9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트럼프 타워에서 트럼프와 만났다. 마 회장은 트럼프에 알리바바의 플랫폼을 통해 미국 중소기업의 성장을 이끌고 일자리 10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이를 환영했다.
외신은 중국이 취임을 앞둔 트럼프를 경계하는 동시에 협력의 제스처를 보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중국 언론은 “마 회장의 방문은 글로벌 전략의 일환일 뿐”이라고 선을 그으며 살짝 발을 뺐다. 이는 중대 이슈에서 대립하며 힘겨루기를 하면서도 많은 공동이익이 있어 틈틈이 협력기회를 노리는 미묘한 미·중관계를 잘 보여준다.
# “전 세계가 중국의 경험을 공유하길 기대하고 있다” (인민일보 해외판, 1월)
시 주석은 1월 15~18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45차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 개막 연설에서 중국의 달라진 위상과 영향력을 과시하고 트럼프에 보란듯 ‘경제 자유화’를 강조했다. 당시 인민일보는 전문가 발언을 인용해 ”시 주석의 다보스 포럼 참석은 글로벌 경기 회복 견인, 세계 거버넌스 개혁 및 다자주의 추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트럼프는 1월 20일 취임사에서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 강조하면서 대통령이 됐지만 노선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 중국과의 마찰을 예고했다.
◇ 트럼프의 미국, 경제무역과 북핵 카드로 중국 압박
# “백악관은 토크쇼 무대가 아니며 전 세계가 그의 말을 듣고 분석함을 기억해야 한다. 상상 속에서 중국을 판단하는 듯 하다. 중국의 환율 정책, 외환당국의 정책 방향, 목표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환구시보, 2월)
#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는 스스로는 물론 나까지 해치는 일이다”(인민일보, 2월)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중국의 제재, 막대한 무역적자, 환율 조작 등을 거론하며 중국을 압박했다. 북한의 도발이 계속됨을 이유로 중국에 ‘대북제재’의 적극적 참여를 요구하고 대립했다.
취임 직후 트럼프는 중국과 일본, 독일 등의 환율이 과도하게 낮아 미국이 손실을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1월 31일 제약회사 임원과의 만남에서 “수 년간 중국 등이 무슨 짓을 했는지 봐라, 그들이 통화절하를 할 동안 얼간이처럼 보기만 했다”고 거침없는 발언도 쏟아냈다.
시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타깃을 중국으로 판단하고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을 언급했고 중국은 긴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31일에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행정명령도 발동했다. 막대한 무역적자 초래 요인을 국가·상품별로 분석하고 반덤핑·상계관세 집행 강화 등 두 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역시 중국을 향한 압박카드로 해석됐다.
#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반대하지만 우호관계도 유지해야 한다. 한반도 정세가 위험한 국면으로 치닫고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중국 내 여론도 분노로 바뀌었지만 감정적 대북정책 변화는 없다” (환구시보, 3월)
# “동북아 정세 혼란의 가장 큰 책임은 미국에 있으며 북한은 오로지 핵탄두가 안전을 보장한다고 믿게 됐다. 미국이 북한에 무력을 행사하면 한국이 불바다가 될 수 있음을 알야야 한다” (환구시보, 4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이어졌고 미국과 중국은 ‘중국 역할론’과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북한은 올 2월 지상지대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 2형’ 발사 이후 한 달에 한 번 이상 최대 세 차례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도발행위를 일삼았다. 이에 트럼프는 북한에 무력제재에 나설 뜻을 강하게 시사하고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에 휩싸였다. 사드 배치와 미국의 강경 대응에 중국은 분노했고 경계하며 한국은 물론 미국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 갈등 속 시진핑 방미, 회담 후 누그러진 듯 했으나..
# “트럼프, 위안화 달라진 평가 ‘좋아요’. 중국은 위안화 안정을 목표로 노력했고 애초에 환율 조작국이 아니었다. 중국을 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는 것은 환영할 일로 트럼프 행정부의 실사구시적 태도를 보여줬다”(환구시보, 4월)
# “이제 중국도 북한의 막무가내식 행보를 좌시하지 않겠다. 대문 앞에서 북한이 날뛰는 것을 보는데 지쳤고 마침표를 찍는게 감당하는 것보다 낫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환구시보, 4월)
4월 6일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1박 2일의 정상회담에 나섰다. 다음날인 7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부 장관은 시 주석이 북한 핵개발이 심각한 단계에 왔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에 공감했다며 향후 양국이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두 정상이 무역 불균형 시정을 위한 ‘100일 계획’에 합의했다는 내용도 공개됐다.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는 소식도 나왔다. 공동성명이나 기자회견은 없었지만 첨예했던 갈등은 무뎌졌고 이후 중국 언론은 북한에 차가운 태도를 보이며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무역 분야 공격을 거둔 것을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 끝나지 않은 경제·무역, 북핵 갈등…타협점 찾을까
# “북핵 압박 수위는 상당히 높은 상황으로 채찍만이 아닌 당근도 중요함을 국제사회가 인식해야 한다” (환구시보, 4월)
# ”중·미 관계는 양국 사회의 막대한 이익과 연관되고 세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 있어 중요하며 관계 유지는 공동의 책임이다. 북핵이 중요하나 양국 관계를 좌우할 이슈로 과장하고 중·미관계를 북핵 해결을 위한 인질로 삼아서는 안된다”(환구시보, 7월)
하지만 북한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대립 양상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중국이 과거보다 강경한 목소리를 태도 변화를 보였지만 미국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중국은 "할 만큼 했다"며 "사드배치,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한반도 위기의 근원"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반발했다.
7월 독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 관영언론은 미국이 미·중관계 자체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8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지식재산권 침해, 강제적 기술이전 요구 등 부당 무역관행을 조사하라는 행정명령으로 중국을 압박했다.
미사일 도발을 이어오던 북한이 9월 3일 6차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지는 듯 했다. 중국의 찬성에 힘 입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추가 대북제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중국도 제재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중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미국 볼멘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 비즈니스 프로그램과 인터뷰에서 “북핵 위기 고조와 관련해 우리는 믿기 힘들 정도의 준비가 돼있다”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무력 행사 가능성이 여전함을 밝혔다.
중국을 향한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시 주석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무척 좋은 관계로 중국은 북한 문제에 있어 실제 돕고 있다"면서도 "중국은 북한과 관련해 중요한 일을 할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 “트럼프 대통령이 19차 당대회와 관련해 시 주석에 축화 전화를 걸었다. 이는 긍정적 조짐이다. 그러나 미국은 강성해지는 중국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환구시보, 10월)
# “중국을 겨냥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태재균형 전략은 실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오바마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 (환구시보, 11월)
양국은 계속 서로를 향해 손짓하며 견제하고 있다. 중국은 '국빈방문+알파'의 예우로 트럼프를 환영하고 선물 보따리를 준비했다. 환구시보 등은 정상회담에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미국이 강력해진 중국을 받아들일지가 최대 변수라고 선을 그었다. 이는 이번에도 양국이 타협점은 찾아도 터닝포인트는 없을 것임을 예상케한다.
미국과 중국의 줄다리기는 중국 경제 급성장, 국제적 위상 제고와 외교 노선 변화 등에 시작됐다. 2009년 미국의 대중 수출 비중은 전체의 5.54%에 불과했지만 빠르게 늘고 있다. 중국은 국방 지출을 늘리며 군사력과 아태 영향력 제고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 외교는 낮은 자세를 강조하던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최근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분발유위(奮發有爲)'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두 대국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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