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같은 작품이 찾아왔다. 육체적으로 또 심적으로 지쳐있던 배우 이연희(29)에게 JTBC 드라마 ‘더 패키지’(극본 천성일·연출 전창근)가 나타난 것이다.
각기 다른 이유로 프랑스 여행을 선택한 사람들이 서로 관여하고 싶지 않아도 관계를 맺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과 소통을 그린 ‘더 패키지’에서 이연희는 프랑스 패키지여행 가이드 윤소소 역을 맡으며 무수한 인연과 운명을 마주했다.
재고 따질 것 없이 “땡 잡았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드라마 ‘더 패키지’를 통해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었다는 이연희. 드라마를 통해 선물 받은 많은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촬영하고 1년여 만에 드라마를 봤겠다
- 그렇다. 12월에 촬영이 끝났고 3월까지 후반 작업을 했었다. 나중에 완성본을 보니 기분이 이상하더라.
사전제작 드라마라 우려되는 마음도 있었을 텐데
- 방송 편성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리들끼리 ‘언제 한 대? 또 밀렸대?’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점점 밀려날수록 계절감도 달라지고 시기가 너무 늦어지면 예전 드라마 보듯 할까 봐 걱정이 컸다. 그런데 제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비슷한 계절감과 시기도 잘 맞아떨어져서 만족도가 컸다.
여행 가이드라는 직업을 경험해보니 어땠나?
- 정말 어렵더라. 개인 휴식 시간이 전혀 없다. 쉰다고 해도 언제 사건이 터질지 모르니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또 프랑스를 완벽히 알고 있으면서 한 번 찡그림 없이 내내 웃으며 대화해야 하니까 힘들더라. 가이드의 고충을 알게 됐다.
가이드 역할을 어떻게 준비했나?
- 개인적으로는 프랑스를 너무 좋아해서 나름대로 공부도 많이 하고 진짜 가이드라는 마음으로 배우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려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연습이 되더라. (배우들이) 내게 신뢰감을 가지길 바랐다.
이연희에게 프랑스는 어떤 의미인가?
- 제가 처음 여행한 곳이 프랑스 파리였다. 제대로 된 혼자만의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떠났는데 너무 좋았다. 완전히 반해버렸다. 미술도 좋아하고 전시도 좋아해서 프랑스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꿈꾼 것 같다. ‘프랑스를 주제로 극이 흘러가면 좋겠다’고. 그런데 4년 만에 운명처럼 ‘더 패키지’가 나타난 거다.
그야말로 운명적 작품이다
- 하늘이 준 기회였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인연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힘든 시기에 ‘더 패키지’를 만났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떠나려고 한 프랑스에서 테러가 터진 거다. ‘아, 나와 프랑스는 인연이 없나?’하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이 드라마가 제게 오게 됐다. 잴 것 없이 바로 출연하기로 하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가이드 오빠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랬더니 그 오빠가 단번에 ‘더 패키지’ 아니냐고 하더라. 프랑스에서 천 작가님을 우연히 만났고 드라마 조언까지 해줬다면서. 거기다 프랑스 관광청 홍보대사까지 되었으니 정말 대단한 인연 아닌가? 꿈을 꾸면 다 이뤄지는 것 같다.
불어 연습도 중요했을 것 같은데
- 불어가 정말 어렵다. ‘에이비씨디(ABCD)’ 단계에서 ‘하우 아 유(How are you)’까지 가기가 정말 힘든 거다. 대본이 나올 즈음에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해갔다. (연습한걸) 써먹으려고 프랑스 식당에서 주문했는데 못 알아듣더라. 절망적이었다. 방법을 달리해 프랑스 영화를 보면서 뉘앙스를 익히기 시작했다. 정말 힘들었다.
드라마에서는 제대로 써먹은 것 같은가?
- 너무 힘들었는데 다들 발음이 좋다고 해주시니까. 잘 된 것 같다. 주변에서 불어를 하니까 달라 보인다고 하더라. 아직 부족하게 느껴지는데. 감독님께서 편집으로 잘 커버해주신 것 같다.
어느덧 데뷔 16년 차다. 연기에 있어서 어떤 ‘감’을 찾았나?
- 한 번 터득한 것을 가지고 다음에 써먹겠다는 건 위험한 생각이다. 연기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상대가 항상 달라지고 연기도 달라지는데 예전에 써먹은 걸 기억해 연기하려고 하면 불편하게 나온다’고 하더라. 알면서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드라마 ‘미스코리아’를 찍을 때 즈음부터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예전에는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연기를 안 해주면 마음이 답답했는데 ‘더 패키지’를 하며 많이 유연해졌다.
연기를 떠나 마음가짐도 달라진 것 같다
- 질풍노도의 20대를 보냈다. 서른 살이 되면서 생각이 유연해지는 것 같다. 누군가 ‘20대는 내 것을 가지고 있기 바쁜 나이고 30대는 그것을 남에게 주고 또 얻기도 하는 나이’라고 하더라. 그 말에 큰 공감을 했다.
연기에 대한 고민과 회의도 많이 느꼈나 보다
- ‘화정’을 찍고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내가 이 일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너무 슬퍼지더라. 점차 시간이 지나며 ‘이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이 없고 이 길이 아닌 것 같다가도 계속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아, 아예 재능이 없는 건 아닌가 보다’ 싶다. 내가 이 일을 열심히 노력해봤었나? 불평만 했지 진심으로 해본 적이 있나? 생각하기 시작하고 (연기를) 임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이연희에게 ‘더 패키지’는 어떻게 남을까
- 사람의 인연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고 가며 마음 맞는 사람들과도 오래 알고 지내기 힘들더라. 드라마를 하면서 인연이나 운명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줬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