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엑소더스③끝]길거리 후원 강요…행인들, 부스만 보면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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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17-12-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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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신의 대가 혹독…인정에만 무작정 호소는 잘못된 방법

  • 직장인들 "무정한 인심?…일부 후원단체,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 원인"

  • 후원단체들 "기부는 사회통합…트라우마 극복하는 하는 것도 우리의 몫"

“에티오피아 식량위기 후원에 동참해주세요. 지금 이 시간에도 굶주리며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역사 안.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로 초록색 조끼를 입은 청년들이 다가와 기부활동을 독려하고 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광화문역에는 구세군 모금활동을 비롯해 기부 단체들이 설치해 놓은 2~3개의 모금 부스가 등장한다. 이들은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매일 5시간 이상 길거리 후원자 모집 활동을 벌인다.

기자가 직접 광화문·명동·종로·시청·잠실 일대를 돌아보니 후원을 요청하는 단체 종류만 5곳이 넘었다. 후원 단체들이 요청하는 주제도 ‘재난 지역에 깨끗한 물을 지원하자’, ‘동아프라카 4개국 주민들을 식량위기에서 구하자’, ‘불우이웃을 돕자’, ‘개발도상국 아동 1:1 후원에 동참하자’ 등으로 다양했다.

직장인 임모씨(36)는 “추위에 고생하는 청년들이 대견해 설문조사에 응했더니 나중에는 수십분 동안 사람을 붙잡아두고 기부를 강요했다”며 “그 다음부터 후원 부스만 보면 자연스럽게 외면하게 된다”고 말했다. 명동역에서 기부단체의 요청을 뿌리친 박모씨(30)도 “갑자기 정기후원을 요구해 당황했다”며 “사람에 대한 불신 때문에 기부혐오 분위기가 생겼는데 인정에만 무작정 호소하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기부 단체 관계자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A단체 관계자는 “날씨만큼 사람들의 마음도 얼어버린 것 같다”며 "일부 단체의 '배신의 대가'를 전체가 혹독하게 치르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칼바람을 맞으며 하루 7시간을 서 있어도 고작 2~3명의 상담밖에 하지 못했다”며 “작년에는 이맘때면 하루 10명도 거뜬했다”고 말했다. 이어 “추위도 힘들지만 사람들의 무관심이 (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며 “그래도 얼굴을 맞대고 권유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 핫팩을 4개씩 붙이면서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구세군 모금활동도 더디긴 마찬가지였다. 잠실역에서 3시간가량 구세군 냄비를 지켜본 결과 20명 남짓만이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그마저도 어린이와 외국인 관광객이 대부분이었다. 구세군과 별도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광화문광장에 설치한 ‘사랑의 온도탑’도 지난 14일 기준으로 27.9에 머물렀다. 전년 동기 대비 30%가량 줄어든 수치다. 

도움의 손길을 외치는 기부단체들의 목소리는 훨씬 더 간절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모금 단체 관계자는 "기부는 사회의 결속 정도를 높여 갈등과 분열을 막고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장치“라며 ”소액, 개인 기부자들이 점점 줄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기부 혐오를 자초한 몇몇의 단체, 사람들 때문에 정말 열심히 하는 다른 단체들의 노력까지 폄하돼서는 안된다”며 “기부단체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충성도 있는 후원자들을 결속시키면서 어려운 시기를 버텨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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