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철비' 정우성, 더 예리하고 신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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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7-12-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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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강철비'에서 엄철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사진=NEW 제공]

언제부터였을까. 배우 정우성(44)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악인들의 생태계를 그린 영화 ‘아수라’를 지나 한 남자가 권력의 설계자를 만나 겪는 흥망성쇠기를 다룬 ‘더 킹’, 북한 내 쿠데타 발생 후 벌어지는 첩보극 ‘강철비’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살피는 그의 시선은 더욱 예리하고 신통해졌다. “본의 아니게 현실을 예측하고 실현하는 작품들에 출연해왔다”는 말에 “의도적인 건 절대 아니었다”며 씩 웃는 얼굴은 말과는 달리 어딘지 모든 것을 관통해온 것처럼 여유롭다.

14일 개봉한 영화 ‘강철비’(감독 양우석)는 북한 내 쿠데타가 발생하고, 북한 권력 1호가 남한으로 긴급히 넘어오면서 펼쳐지는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다. 이번 작품에서 정우성은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 역을 맡아 북한 사투리 연기 및 처절한 액션을 선보이며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최근 영화 개봉을 맞아 아주경제는 정우성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작품에 대한 이해는 한층 더 깊고 예리해졌지만, 배우로서의 태도는 더욱 여유로워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 '강철비'에서 엄철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사진=NEW 제공]


“영화를 찍고 나서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됐죠. ‘더 킹’도 그렇지만 ‘강철비’ 역시 아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에요. 신기가 있나? 하하하. 핵을 준비하고 무장하는 상황 속, (영화 속 일들이) 근시가 되겠구나 하는 가정에서 쓰인 거니까.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겠죠. 전례를 봐가며 공부를 하고 이런 리액션을 취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직설화법으로 이야기하는 양우석 감독님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정우성의 말처럼 영화 ‘강철비’의 메시지는 꽤나 명확하다. 그 때문에 출연할 때 고민도 많았을 터. 정우성에게 “많은 우려 속 당신을 움직이게 만든 부분이 무엇”인지 물었다.

“던져지는 상상력이 재밌었어요. 북한을 바라보는 감정과 자세 등을 다시 해볼 수 있기도 하고요. 영화의 엔딩에 관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영화적 상상이고 또 외교안보수석이 가장 적절하게 내릴 수 있는 선택이 아닐까 싶어요. 상상력 일부분인 거죠. 인물들의 태도나 자세가 곡해될 여지가 있는데 그런 것들을 순화시키는 작업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죠. 감독님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셨고요.”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양 감독은 ‘강철비’를 소개하며, “남북은 냉철하게 보기 힘든 관계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강철비’를 통해 남북을 냉철하게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기묘한 관계를 둔 남북에 대해 주연배우인 정우성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남북이나 핵전쟁에 관한 생각이 바뀐 건 없어요. 우리는 막연한 키워드로 북한을 바라보고 있잖아요? 늘 생각하는 대상도 아니고요. 북한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들어진 세트처럼 여겨지고 있어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이해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지나왔고요. 현 체제와 정권은 무너져야 하는데 그 ‘다음’에 대한 고민은 안 하는 것 같아요. 그걸 준비하고 합리적 통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스스로 해야 하죠. 외부에 의한 교통정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보여요.”

영화 '강철비'에서 엄철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사진=NEW 제공]


극 중 엄철우는 북한 최정예요원이다. 쿠데타 공모 세력을 처단하라는 정찰총국장 리태한(김갑수 분)의 지령으로 개성공단으로 향한 날, 미군의 MLRS, 일명 ‘스틸레인’이 개성공단으로 발사돼 수많은 민간인이 죽고 만다. 아비규환이 된 그곳에서 엄철우는 치명상을 입은 북한 1호를 발견, 그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신하기에 이른다.

“엄철우에 관해 제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부분은 없었어요. 전문적이고 팩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상이기 때문에 양 감독님이 철저하게 준비하고 저는 그 안에서 (감독님의) 디렉션에 따라 움직였죠.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설정된 엄철우의 삶을 이해하고 사투리 등을 충실히 준비하는 것이었어요.”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정우성은 치열하고 뜨겁게 엄철우라는 인물을 채우고자 했다. 그가 가장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북한말. 그는 촬영을 쉬는 동안에도 “유튜브를 보며 북한 사람들의 말씨를 익히려 노력”했다고.

“북한말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계시는데 저는 그보다 ‘진짜 말투’가 궁금했어요. 평양 안에서 찍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유튜브에 떠도는 영화들을 보았죠. 제 또래 평양 남자들의 진짜 말투를 익히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억양부터 속도까지 하나하나 살폈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속도였어요. 엄청나게 빨랐거든요. 그 이질감을 표현하는 게 중요했죠.”

현실과 가깝게 다가가려고 하지만 언제나 영화인들은 리얼리티와 영화적 리얼리티 사이에서 갈등하기 마련이다. ‘진짜’ 북한 사투리를 구현하고자 했지만, 관객들에게 익숙한 표준 북한 사투리가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북한쪽 사투리에 대한 타협은 관대한 편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사투리에 관해서 타협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못 알아들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보여주는 부분이 강하기 때문에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강철비'에서 엄철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사진=NEW 제공]


언제나 “죽을 것처럼 연기하는” 정우성인만큼, 이번 작품에서도 치열하다 못해 처절한 액션을 선보였다. 전작 ‘아수라’와 비교해 ‘강철비’의 액션 수위를 묻자 그는 “‘아수라’ 때보다 살을 많이 빼서 그런지 ‘강철비’ 때는 정말 힘든 액션을 치렀다”고 답했다.

“생존을 위한 액션이죠. 멋을 위한 건 아니었어요. 어떤 액션은 멋을 최우선으로 하겠지만 이번 작품은 살기 위한 치열함과 완력 싸움? 치고받는 싸움 속에서 ‘받는’ 액션을 주로 했던 것 같아요.”

영화 개봉 후 엄철우와 북한 암살요원 최명록(조우진 분)의 액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정우성은 조우진의 첫 액션을 칭찬하며, 치열했던 그 날의 기억을 되짚었다.

“테이크를 정말 많이 갔어요. 제가 살이 많이 빠져있던 터라 체력도 많이 떨어져 힘들었거든요. 우진 씨가 첫 액션이었는데 촬영 이후 몸살을 앓았다고 해요. (액션을) 잘 해냈고, 상황을 잘 이겨냈죠.”

북한의 철우와 남한의 철우의 주고받는 케미스트리 역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언급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정우성은 곽도원과의 연기 호흡에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늘 리허설 없이 자유롭게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리허설이라는 건 상대가 어떻게 하는지 알고 준비한 채 들어가는 거잖아요? 그런 걸 일절 안 했어요. 그 덕에 밀폐된 차 안에서 철우와 철우가 주고받는 즉각적이고 살아있는 감정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케미스트리는 말할 것도 없고요.”

영화 ‘아수라’에 이어 ‘강철비’까지 두 번째 호흡을 맞추게 된 곽도원과 정우성의 케미스트리는 말 그대로 좋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렇다면 첫 번째 작품을 하게 된 양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좋은 화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대가 한 번쯤 필요로 하는 일들을 돌아보는 감독님이시죠.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감정 혹은 함께해야 할 화두에 대해 굉장히 좋은 화자로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감성적으로만 풀어내는 게 아니라 굉장히 많은 사실과 입증된 것들 안에서 객관성을 가지고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작가기도 하고요.”

영화 '강철비'에서 엄철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사진=NEW 제공]


“시대에 필요한 일들을 돌아보는 것”은 배우 정우성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꾸준히 사회활동에 참여하며 UN 난민기구 친선대사 활동·기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책임감을 느끼고 무겁게 접근하면 안 돼요. 물론 하면서 책임감을 찾아갈 수는 있겠죠. 어릴 적 30대에는 ‘나도 재단을 만들어야지’하는 생각을 했는데 거창한 걸 생각하고 추진하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들이 생기더라고요. 하다 보면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 생각하고 해나가다가 이유를 찾게 됐고 그들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난민기구 친선대사 활동을 하면서 제 영화를 보았다는 사람, K팝을 안다는 사람 등을 만났고 저의 활동으로 그들은 우리나라에 호감을 느끼게 될 테니 한류는 아니더라도 작게나마 대한민국을 알리고 인지시키는 활동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어떤 ‘활동’에 매진 중인 정우성은 배우를 넘어 연출의 영역까지 확장할 예정이다. 이미 단편 ‘러브 비 플랫’, ‘킬러 앞에 노인’, ‘세가지 색-삼생’ 등을 선보인 그는 내후년 장편 연출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연출작 역시 진행되고 있어요. 내후년은 안 넘기려고요. 시나리오를 보고 생각해봐야죠. 라인업을 잡다 보니까 조금씩 늦어진 것 같아요.”

감독으로서 도약을 꿈꾸는 그에게 “주연 역시 정우성이냐”고 묻자, 그는 “굳이 안 그래도 된다”며 웃어 보였다.

“사실 30대 때는 직접 하려고 했어요. 이야기를 상상하고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저를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굳이 안 그래도 되겠다’ 싶어요. 에너지도 달리니까 하나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다른 사람을 주인공을 시키려는데 누가 하려고 하나 싶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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