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롤로 시작해서 헤어핀으로 끝났다. 2017년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지난해 겨울 광장에서 시작된 촛불은 결국 부당한 권력을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정권 교체로 이어진 조기 대선, 문재인 정부 출범 등 숨가쁘게 지나간 한 해를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과 박 전 대통령의 사진 2장으로 돌아본다.
S#1. 헌법재판소 앞
3월 10일 오전 7시 50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검은색 에쿠스에서 내렸다. 사복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헌법재판소 입구로 향하는 이 권한대행을 향해 취재진의 플래시가 터졌다. 이 권한대행은 이날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출근했다. 오전 11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선고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카메라 셔터 소리만 요란한 가운데, 엉뚱하게도 이 권한대행 뒷머리에 매달린 분홍색 헤어롤 2개가 취재진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권한대행이 머리 손질을 위해 꽂아놓은 헤어롤을 깜빡한 것이다.
"주문(主文),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3시간 30분 뒤 이 권한대행은 주문(呪文)을 외듯 엄숙한 목소리로 박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했다.
이 권한대행은 2011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0·26 사태를 계기로 법대에 진학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어떤 방향이 사회가 올바로 가는 길일까" 고민했다는 고3 소녀는 38년 뒤 '박정희 신화'로 상징되는 구 시대의 청산을 선고했다. 분홍색 헤어롤은 그렇게 한국 민주주의의 한 장면이 됐다.
S#2.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27일 오전 10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박근혜 없는 박근혜 재판이 열렸다. 100번째 공판이다. 1심에서만 100회 이상 공판이 열리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박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0월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 연장에 반발하며 재판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입을 뗐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며 "법치의 이름을 한 정치적 보복은 저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법정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은 지난 5월. 특유의 올림머리는 그대로였지만 이전과 달리 다소 흐트러진 상태였다. 구치소 내에서 판매하는 1660원짜리 집게핀과 390원짜리 머리핀을 이용해 자신이 스스로 손질했기 때문이다. 헤럴드경제가 지난해 보도한 박 전 대통령 올림머리 체험기에 따르면, 이와 같은 헤어 스타일을 위해선 머리핀 22개가 필요하다. 손질에 걸리는 시간은 70분, 비용은 15만원이다.
박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 사랑은 언제부터였을까. 경향신문은 1988년 8월 올림머리를 한 37세 박 전 대통령의 근황을 전하며 "1979년 10·26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연 박근혜씨. 눈가에 드러난 잔주름을 제외하고는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이 그때 그대로"라고 밝힌다. 박 전 대통령은 정계 입문 이후에도 줄곧 올림머리를 고수해왔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천영식 전 문화일보 정치부장은 저서 '나는 독신을 꿈꾸지 않았다'에서 "박근혜는 살아생전 어머니가 '너는 뒤로 머리를 묶는 게 어울린다. 어쩌면 그것까지 나하고 닮았냐'는 말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머리 모양만큼은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고 밝힌 바 있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에 대한 그리움일까. 육 여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도적 연출일까. 답이 어느 쪽이든 박 전 대통령이 집요할 정도로 올림머리에 집착한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마찬가지였다. 박 전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 전에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손질했다는 보도는 탄핵 여론에 불을 질렀다. 발목을 잡은 건 결국 자기자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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