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랑 이전에 풍월도 집단이 있었다
화랑은 진흥왕 때 생겨났다고 하나, 사실상 그 이전에도 유사한 역할을 하는, 풍월도라는 집단이 있었다. 삼국지와 후한서에서는, 삼한시대에 이미 청소년 집회소와 조직이 있었다고 말한다. 삼국시대로 오면서 고구려의 조의선인(皁衣仙人, 검은 옷을 입은 선인) 또한 화랑과 유사한 집단을 이끄는 존재였다. 이들은 민족의 고유신앙과 주체정신을 전승하면서 왕국이 정립되는 시기에 고대의 가치를 잇는 파워엘리트의 소명을 수행한 것이다.
화랑제도는 진흥왕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시스템이 아니라, 신라가 삼국 중에 가장 뒤늦게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단군시대부터 전승되어오던 천제(天帝) 의식 관행을 새로운 조직으로 담아내서 겨레의 정체성을 계승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 화랑도(花郞徒) 조직원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화랑을 리더로 하는 신라의 청소년 수련단체로 볼 수 있다. 화랑은 화판(花判), 선랑, 국선, 풍월주라고도 불렀다. 화랑은 대개 진골 이상 귀족이었으며, 낭도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룹에는 승려도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승려 또한 당시 사회에선 최고 귀족층의 일원이었다. 승려낭도로 확인되는 사람은, 혜숙, 안상, 범교사 등이다. 취도, 월명사, 충담사, 전밀도 화랑도였을 가능성이 있다. 대개 이들은 그룹에 섞여서 정신적인 자문을 해주는 멘토에 가까운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이들은 십대가 아닌 어른이었다.
낭도는 문도(門徒)라고도 불렀는데, 상류 계층 출신이 많았겠지만 일반 병졸로 참전했던 평민낭도도 적지 않았다. 화랑도는 원래 신궁(神宮)에 제사하는 역할이 우선이었으나 이후 왕권이 강화되어가면서 인재교육, 무예수련, 교우를 위한 그룹으로 성격이 바뀐다.
화랑도의 나이는 대개 15-18세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보면 ‘화주(花主)’라는 말이 나온다. 화주는 성인으로 화랑과 낭도를 보호해주는 전담 관리였던 듯 하다. 이들은 화랑도의 조직 계통과는 별개이다. 이상국(아주T&P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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