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굴기, 비트코인 채굴기 있어요"
2018년 1월, 중국 남부도시 선전의 기온이 10℃ 밑으로 떨어지고 연일 빗방울이 날렸지만 전자상가 밀집지역인 '화창베이(華强北)'는 인파가 몰리며 뜨거웠다. 비트코인 채굴기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매장 앞을 지나가면 "휴대전화, 휴대전화 있어요"라고 말을 걸었지만 이제는 '채굴기'라는 단어밖에 귀에 안들린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중국 전자산업의 발원지로 중국판 실리콘밸리로도 불리는 선전의 화창베이가 최근 비트코인 채굴기의 글로벌 중심지로 거듭났다"며 "미국, 일본, 한국은 물론 심지어 러시아의 고객까지 이곳을 찾고 있다"고 소개했다. 비트코인 채굴기는 일종의 '암호문'를 풀어 얻는 비트코인을 쉽게 채굴할 수 있도록 만든 컴퓨터를 말한다.
화창베이 내 대형 전자상가인 싸이거(賽格)전자광장의 경우 4~6층 대다수 매장에서 비트코인 채굴기를 팔고 있다. 4~6층은 원래 컴퓨터 부품을 주로 판매했는데 최근 일부 상점은 아예 '△△채굴업'이라고 상호명을 변경했을 정도로 채굴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화창베이에서 주로 판매되는 비트코인 채굴기는 '마이(螞蟻)S9(ANTMINER S9)'와 '다스비(達世陛)D3', '차이터비(菜特幣)L3+' 등이다. 연산능력이 뛰어나 상대적으로 많은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 있는 높은 사양의 채굴기는 물량이 부족해 가격이 치솟고 있다.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중국의 '비트대륙(比特大陸)'의 마이S9의 경우 출시가격은 1만1000위안(약 190만원)이지만 최근 화창베이에서 2만6000위안(약 449만원)에 판매된다. 급증하는 수요를 공급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생산업자와 판매업자 모두 웃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비트코인 투기 열풍이 불고 부작용이 커지자 중국 당국은 대형 가상화폐거래소를 잇달아 폐쇄하고 P2P(개인 대 개인) 대출 플랫폼 등을 이용한 가상화폐 거래, 심지어 최근에는 채굴까지 막고 나섰다. 하지만 비트코인 채굴기 시장은 아직도 웃고 있다.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비트코인 채굴기 수요가 급증했고 '메이드 인 차이나'가 이를 놓치지 않고 파고 들었다는 분석이다.
중국 21세기경제보도(21世紀經濟報道)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세계 3대 비트코인 채굴기 생산업체는 비트대륙, 자난윈즈(嘉楠耘智), 이방(億邦)통신으로 모두 중국 기업이다. 이들은 전 세계 시장의 90%를 장악한 상태다. 2013년 설립된 비트대륙은 비트코인 채굴기에 필요한 반도체와 하드웨어를 생산·판매하며 세계 시장 75%를 점령했다. 구체적인 매출을 공개한 바는 없으나 거액을 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2위인 자난윈즈의 실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자난윈즈는 세계 시장의 22%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까지 총 16만대의 비트코인 채굴기를 판매했다. 2015년 순익은 224만 위안에 그쳤으나 지난해 1~4월 순익만 3269만 위안에 육박했다.
하지만 최근 가상화폐 시장이 불안하게 출렁이고 당국의 규제도 강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는 분위기다. FT는 "비트코인 수요가 급증하면서 채굴 시장과 수익이 커졌으나 중국 당국이 강력한 규제조치로 단속의 고삐를 계속 조이고 있어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중국 당국이 거래소를 폐쇄하고 지방정부에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비트코인 채굴업 중단을 요구했다"면서 "대규모 비트코인 채굴장이나 채굴행위 자체가 에너지 소모량이 많고 오염을 유발하며 투기행위를 부추길 수 있어 규제는 계속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도 폭락했다. 다른 주요 가상화폐의 상황도 비슷하다. 비트코인 가격 폭락이 시장 수요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어 채굴기 시장도 불확실성이 아주 크다는 지적이다.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 삼성전자의 채굴기 시장 진입을 두고 중국 현지 언론이 "너무 늦었다"고 분석한 기사도 눈에 띈다. 최근 삼성이 러시아의 비트코인 채굴기 생산업체 '바이칼'의 채굴기 전용 주문형반도체(ASIC) 파운드리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에 대해 증권시보(證券時報)는 "삼성전자가 매출 증대를 위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너무 뒤늦은 선택"이라며 "중국 업체가 시장을 장악한 상태로 채굴기 가격도 이미 최고점을 찍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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