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극적인 역전승이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지난 5일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징역 5년이 선고된 원심 판결을 파기한 것.
재판부는 이날 특검팀이 공소제기한 뇌물공여 액수 430여억 원 중 삼성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승마 지원을 위해 독일 내 송금한 용역 대금 36억 원과 마필·차량 무상 이용 이익에 한해 유죄로 인정했다.
180도로 달라진 항소심 판결에 대해 삼성그룹 사내 법무팀의 저력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이 부회장의 공식적인 변호인단은 법무법인 태평양과 기현, 그리고 김종훈 변호사다. 기업 소속의 변호사는 직접 소송을 대리할 수 없다. 그러나 복수의 언론은 이 부회장 등의 재판 과정 내내 검찰 출신 이모 변호사가 비공식적으로 조력했다고 보도했다.
서울지검 부장검사, 제주지검 차장검사 등을 거쳐 대검 수사기획관을 지내고 검찰을 떠난 이모 변호사는 김앤장에 몸을 담았다. 2004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변호인단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5월 사정당국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모 변호사가 매주 세 차례씩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사내 법무팀과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변호사들을 모아 놓고 대책회의를 갖는 등 사실상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겨레' 또한 같은 해 10월 "1심 재판 전략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모 변호사가 항소심에서도 여전히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면서 "1심 재판 중간에 이 부회장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변호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모 변호사는 이 부회장의 공판에 자주 모습을 보였다고 알려졌다.
삼성 측은 시사저널에 "이모 변호사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단지 과거와의 인연으로 재판에 일반 방청객 자격으로 참석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그동안 베일에 쌓인 삼성 사내 법무팀의 규모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삼성의 '법무실'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2007년. 삼성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폭탄 선언'이 시발점이다.
삼성그룹 법무실의 정식 명칭은 '사장단협의회 산하 법무실'이다. 주간조선이 2007년 11월 삼성 법무실 소속 변호사 12명의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명단에 오른 12명 중 6명은 검사 출신, 5명은 판사 출신이다. 보도 시점을 기준으로 모두 10년 안팎의 경력이 있는 베테랑 '전관(前官)'들이다. 나머지 1명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이수형 전 미래전략실 기획팀장(부사장). 이 전 부사장 또한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보유 중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탄 선언' 이후 법무실은 김상균·서우정 당시 부사장의 '공동실장대행' 형태로 운영됐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인 김상균 부사장의 행보는 곧 삼성 법무실의 현주소다. 김 부사장은 2010년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준법경영실로 이름이 바뀐 법무실을 총괄하게 된다.
2014년 5월 준법경영실 인력들은 대거 삼성전자로 소속이 바뀐다. 당시의 조직개편은 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3세 경영체제 구축 작업으로 평가받았다. 김 사장 또한 현재 삼성전자 법무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삼성전자의 지난해 3분기 보고서를 통해 현재 법무실의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법무실장을 맡은 김상균 사장 휘하에 안승호 IP센터장, 조준형 법무팀장, 지재완 해외법무팀장, 신명훈 담당임원 등 4명이 부사장대우로 등재돼 있다. 조준형 팀장 또한 인천지검 검사 출신이다.
법률신문은 2013년 6월 삼성전자에 임원으로 재직하는 변호사가 20명이라고 보도했다. 2명을 제외한 전원이 판·검사 출신 전관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삼성그룹 전체에 소속된 변호사는 580여 명이다. 국내 1위 로펌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가 800여 명, 2위인 광장의 경우 400여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그룹은 그 자체로 하나의 로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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