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 구조조정 실패 논란과 관련해 당시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산업 논리보다 금융 중심의 구조조정을 하게 된 이유를 이처럼 설명했다.
실제로 구조조정을 마친 조선·해운업체들은 여전히 적자의 늪에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물류비가 상승하는 부작용까지 더해 금융위원회가 주도한 구조조정이 실패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해운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게 가장 큰 실패 요인이 된 것이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3년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지난해 연결기준 당기순손실이 1조2088억원(잠정)으로 전년 대비 적자 규모가 두 배 이상 커졌다. 무려 149.7%나 증가한 수치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과 달리 생사의 기로에서 선택 받은 해운사다. 국적선사였던 한진해운은 자구안 미흡을 이유로 끝내 채권단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파산의 길을 걸었다. 반면 현대상선은 옛 모기업인 현대그룹이 유동성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약 1조원의 공적자금 지원을 약속받았다.
당시 한진해운은 대우조선해양과 비교됐다. 대우조선의 경우 정부가 서별관회의를 통해 4조2000억원의 지원을 결정한데 이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추가로 자금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형평성 논란으로 이어졌다. 대우조선에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던 당초 입장을 바꾼 것은 물론이고, 한진해운이 '현대상선 살리기'의 희생양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이에 대해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각종 의혹을 부인하면서 "한진해운은 우리가 제시한 구조조정 원칙을 충족시키기 못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을 제치고 살길을 도모하게 됐다.
문제는 이 같은 구조조정 성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상선은 여전히 주력 사업인 컨테이너사업 부문에서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또 '2M' 얼라이언스와 계약을 맺었지만 미주 항로 투입은 제한을 받고 있다.
구조조정을 거친 다른 조선·해운사도 마찬가지다. 대우조선은 지난 5년간 누적 순손실 규모가 7조원이 넘고, 현대중공업도 1년 만인 지난해 다시 적자로 전환됐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전례는 최근 기업 구조조정의 공이 산업통상자원부로 넘어간 것과 관련이 깊다. 임 전 금융위원장은 뒤늦게 "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물류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부족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럼에도 '이해관계자의 손실 분담' 원칙은 지켰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금융 논리로만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다는 비판에 따라, 이번 정부는 산업부가 전면에 나섰다. 하지만 '산업적 측면 고려'라는 구조조정 방식이 가져오는 혼란도 만만찮다. 정치적 판단이 산업적 판단으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 및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에서도 (재무)실사 등을 통해 향후 산업 및 기업 성장성과 매출 전망 등을 예측한다"며 "결국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조정 현실 속에서 '네 탓, 내 탓'보다는 부처 간 충분한 논의가 수반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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