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객만족 시대에 살고 있다. 기업들이 고객만족경영을 추구하면서 갑자기 신분이 상승됐다. ‘고객은 왕이다'라며 고객을 일단 치켜세운다. ’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이란 뜻인 순우리말 ’손‘과 그 높임말인 ’손님‘도 버렸다. 이젠 고객이라 부르지 않고 손님이라고 부르면 뭔가 손해본 듯 찜찜하다.
고객만족경영은 경영의 모든 부분을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객을 만족시켜 기업의 생존을 유지하려는 신(新)경영 트렌드의 하나다.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이나 유럽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 말쯤부터 ‘손님’이 사라지고 ‘고객’이 등장했다.
‘고객이 OK할 때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등장한 고객만족은 고객사랑, 고객감동, 고객기절까지 진화했다. 고객도 모자라 말끝마다 “네 고객님, 고객님” 한다. 배꼽 부위에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90도로 인사하는 광경은 흔하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원하는 것을 기대 이상으로 충족시켜 줌으로써 재구매율을 높이고 고객의 선호가 지속되도록 하려는 업계의 노력이 눈물겹다. 어느 지자체는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고객님”하고 ‘말하는 인형’을 입구에 세워놨다고도 한다. 고객만족도 조사가 아이디어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를 매년 실시해 발표하고 있다.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고객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품질을 제공해야 하고, 고객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직원 복지 향상, 일체감 조성 등 직원 만족도 아울러 뒤따라야 한다. 고객만족경영은 상품의 품질뿐만 아니라 제품의 기획·설계·디자인·제작·애프터서비스(AS) 등 모든 과정에 걸쳐 있고, 제품에 내재된 기업문화 이미지와 더불어 상품 이미지, 이념 등 고차원적인 개념까지 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만족감을 준다. 그래서 흔히 고객만족, 직원만족, 상품만족 순으로 중요도를 삼는다. 고객만족경영은 시장점유율 확대나 원가절감이라는 단기 목표보다 고객만족을 궁극적 경영목표로 추구한다.
정부의 국정운영 목표나 방향도 고객만족경영과 흡사하다. 엄밀히 말하면 '국민만족경영'이다. 헌법 제1조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으니 고객이 아니라 주인인 국민이 맞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통해 "국가가 이제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까지 했다. 공무원만족과 정책만족을 통해 국민만족경영을 해나가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정부는 저(低)성장, 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성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사람 중심 경제로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높은 국정지지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삶은 기대만큼 나아지지는 않았다. 여러 기관에서 진행한 정부 경제정책 설문결과를 종합해보면 국민체감이 높은 경제 성적표는 ‘보통 이상’으로 나온다. 나머지는 불만고객이라는 얘기다.
연구에 의하면, 불만고객 중 침묵하는 고객의 재거래 성사비율은 9%다. 나머지 91%는 ‘말없이 떠나는’ 고객이다. 불만을 얘기하는 고객은 전체의 5~10%, 불만을 해결해주면 재거래율이 54%가 된다. 문제를 경청해 주기만 해도 재거래율이 19%로 오른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어느 지자체의 말하는 인형처럼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말만 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불만고객은 늘어난다. 문제를 해결해주는 소통에 적극 나서야 고객만족도는 올라간다.
고객만족, 종업원만족보다 상품만족이 먼저다.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우수한 제품을 만들었다고 하자. 그 상품을 구매하고자 왕래가 없던 먼 친척은 물론 평소 연락이 없던 사람들마저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지적하지 않아도 직원들의 서비스 태도가 좋아지고, 고객만족은 저절로 따라 온다.
상품은 직원들이 만든다. 전문가들은 상품만족을 이끌어내는 직원교육을 하면서 골프 잘 치는 비법 '4C'를 차용한다. 공무원의 고객만족 교육에도 효과를 볼 수 있겠다. 첫째는 자신감(Confidence)이 있어야 한다. 자존심을 살려줘야 한다. 어공들이 늘공을 무시한다는 얘기가 밖으로 들리니 하는 말이다. 둘째, 집중(Concentration)이다. 오로지 실력 하나만으로 나만이 ‘생각지도 못할 정책’을 만든다는 자긍심을 키워줘야 한다. 셋째는 응원(Cheering)이 필요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 냈을 정책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야 한다. 넷째, 동반자(Company)가 좋아야 한다. 내 사람만으로 자리를 모두 채울 수는 없다. 콘크리트가 높은 강도를 가지려면 시멘트만으로는 안 된다. 하찮은 모래와 자갈이 시멘트와 잘 어우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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