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훈(45) 감독은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두고 여러 종류의 ‘난관’에 봉착했다. 같은 원작을 다른 결로 변주하는 것도 그렇지만, 완전무결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부담이 됐다. 숱한 고민과 방황 끝에, 이 감독은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고, 지레짐작이나 아는 체 없이 담백하고 순수한 로맨스를 완성시켰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세상을 떠난 ‘수아’(손예진 분)가 기억을 잃은 채 ‘우진’(소지섭 분) 앞에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동명의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일본 감독 도이 노부히로가 영화화해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세상을 떠난 여자가 다시 가족에게 돌아와 다시금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 모두의 염원을 담은 완전무결한 로맨스는 이장훈 감독으로 인해 조금 더 친숙하고, 낭만적인 성장과 변화를 마쳤다.
원작은 어떻게 만났나?
- 소설로 처음 접했다. 원래 소설이나 영화를 보고 잘 우는 편이 아닌데 (원작을 보고) 펑펑 울었다. 눈물이 확 터지더라. 지하철에서 서서 읽다가 울어버렸다. 사실 처음에는 (입봉작으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 잘 안 풀리더라. 제작사 대표님께서 ‘리메이크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가져와보라’고 하셨는데 단박에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생각났다.
소설을 시나리오화시키면서 이장훈 감독화 시키는 것이 중요했겠다
- 에피소드 같은 것들은 새로 만들었다. 원작의 큰 줄기는 같되 세세한 부분들이 많이 달라진 거다. 그런 과정에서 ‘이 영화는 유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슬픈 결말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슬픔이 극대화되려면 행복했던 순간들이 더 유쾌해 보이길 바랐다. 그 부분에 중점을 뒀다.
그 부분에 대해 우려도 들리던데
- 원작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유쾌한 면면들 때문에 우려를 표하시는 걸 알고 있다. 원작을 헤치지 않았을까? 걱정하시는 거다. 하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은 그 면들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한국적 정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캐릭터들이나 상황들이 원작과 달라졌는데 보다 ‘우리’에 가까워졌다고 본다
- 사실 저는 ‘한국적 정서’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걸 알았다면 진작 입봉하지 않았을까? 하하하. 원작과 비슷하게 한다고 하면 어설프게 닮기만 했을 것 같고 뭔가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더라. 아직도 사실 ‘한국적 정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결국에는 관객 입장에서 봤을 때 ‘보고 싶은 것’에 대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거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보고 싶은 것’으로 밀고 나가자고.
극 중 많은 설정이 달라졌다. 극 중 우진의 친구 홍구(고창석 분)가 새롭게 등장, 우진의 직장 동료인 현정(손여은 분)의 역할이 축소됐다
- 원작 소설에서는 동네 할아버지가 홍구의 역할을 해준다. 우리 영화에서도 의사 선생님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바라봐줬으면 했던 거다. 하지만 뭔가 유쾌함을 책임져줄 수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면 어떨까 생각했고, (홍구가) 수아의 동창이기도 하니까 새로운 관계 역시 만들어지겠더라. 설정하면서 얻는 게 더 많다고 생각했다.
직장 동료인 현정의 경우는 시나리오상에서는 더 분량이 있었다. 일본영화에서는 수아가 현정에게 우진을 부탁한다. 현정이 우진을 좋아하니 그녀에게 남편과 아들을 맡긴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너무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장면이 수아라는 캐릭터에 도움이 될까? 남자의 입장에서는 짠해 보이긴 하지만 여성의 시선에서는 폭력적이라고 생각됐다. 상대방의 의사도 묻지 않고! 감정적인 부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수아에게 해가 된다면 빼는 게 맞겠다고 봐서 (현정의 역할을) 축소했다.
확실히 그 당시 일본 정서를 반영하다 보니, 현재 한국여성 관객들에게는 불편한 요소들이 있었다. 이장훈 감독은 그런 부분들을 배제하려고 한 거고
- 그렇다. 여성의 관점에서 원작 영화를 볼 때 조금 걸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엄마가 기억을 잃고 돌아왔는데 아빠와 아이의 이야기만 믿고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가 되거나 요리하고 집안일을 하는 모습이 제게는 설득이 안 됐다. 여성에게 모성애를 강요하는 부분처럼 느껴졌다. 그런 것들이 지금 정서와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요소들을 바꿔보자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수아와 지호와의 관계들이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들로 작용 됐다. 엉뚱한 수아가 점차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고 그 또한 (영화에) 얻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인물들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보기 좋았다. 모두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점들
- 저 역시 이 영화는 세 사람 모두의 성장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영화의 흥행을 기대하는 부분 중 하나가 멜로, 가족 드라마의 조화로움이다. 어느 지점이든 공감할 수 있지 않겠나
- 제가 가장 바랐던 반응이다. 초기 시나리오를 우리 아이에게 보여줬는데 당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아이는 (시나리오에) 시큰둥했었다. 딱 한 번 크게 동요했는데 바로 아이와 엄마가 헤어질 때더라.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감정을 쌓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만 봐도 슬플 수밖에 없겠더라. 제가 원작을 보며 ‘더 좋아질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던 건 아이와 엄마가 헤어질 땐 너무 슬픈데 아빠와 엄마가 헤어지는 장면은 아무 느낌이 안 오더라. 그게 너무 아쉬웠다. 영화에서는 수아와 우진의 감정도 슬펐으면 하고 바랐고 정말 많은 고민을 거쳤다.
해결 방안은 무엇이었나?
- 별생각을 다했다. 만나지 못하게 할까, 이별을 마지막에 보여줘야 하나? 하하하. 이들이 분명 나눠야 할 대화가 있으니까.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해’, ‘네 곁에 있어서 행복했어’ 라는 대화는 꼭 필요했다.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헐레벌떡 뛰어온다고 해도 와 닿지 않을 것 같더라. 고민 끝에 (이야기를) 교차로 보여주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별의 호흡이 이어지다가 끝내 둘이 만났을 땐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거다. 눈빛만으로도 충분하겠다고. 그런 부분들이 저는 영화가 우진과 수아만의 멜로가 아닌 우진과 수아, 지호의 멜로라고 본다. 모든 관계가 다른 정서를 주니까. 보다 다양한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말한 대로 관계의 감정, 강약 조절이 중요했을 것 같은데
- 우진과 수아의 관계가 주였다. 엄마와 아들의 관계는 영화초부터 쌓지 말자고 생각했다. 분명 영화 말미 폭발력이 있기 때문에 우진과 수아의 관계와 감정을 쌓는 게 중요했다. 그래야 둘의 이별이 슬프게 느껴지니까. 가장 중요한 건 우진과 수아의 관계였다. 아들과의 감정은 어떻게 해도 약화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영화의 미장센도 많은 언급되고 있다. 특히 일본영화 속 집구조를 그대로 재연했던데
- 영화에서 가져온 부분이 많다. 식탁에 마주 앉은 부자(父子)의 모습 같은 것들. 물론 우리 영화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나오지만. 또 집안의 모습들이나 마당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우진과 여고생이 자전거로 대결 구도를 펼치는 모습 같은 것도…. 돈을 주고 샀는데 좋은 건 써야 하지 않겠나. 하하하. 살짝 다르게 터치했지만, 일본영화의 좋은 구성들을 그대로 적용한 것도 많았다.
수아의 공간은 새로 창작했는데
- 일본영화에는 없었다. 그 부분은 우리가 새로 민들었다. 직접 동화책을 만들어 줄 정도의 재능을 가진 수아가 모든 걸 포기하고 우진을 위해 시골로 왔으니. 우진이 그 정도는 해주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오랜 시간이 걸려서 창고를 하나 만들어줬을 거로 생각했다.
최근 극장가에 ‘멜로’가 희박해졌는데. 이에 대해 아쉬움은 없나?
- 관객들의 정서를 잘 모르겠다. 저는 영화를 선택할 때, 관객의 입장에서 ‘장르’보다는 ‘이야기’를 택한다. 그렇다 보니 멜로가 드물어진 게 꼭 장르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는 이 영화의 장르보다는 이야기의 힘을 믿었기 때문에 밀고 나간 거다. 장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영화를 10분만 보여준다면, 어떤 장면을 꼽고 싶나?
- 잘 모르겠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전 재미있는 건 오히려 아껴두고 싶다. 관객들을 끌고 오는 힘은 두 배우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두 배우의 케미가 돋보이는 장면을 보여주고 영화의 핵심을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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