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파고든 엘리엇…엘리엇 도와주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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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구·이소현 기자
입력 2018-05-0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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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물산ㆍ현대차 전방위 압박

  • "외국 투기자본에 그야말로 놀아나는 형국"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한 미국계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4일 현대차그룹에 '주주 이익 위한 추가조치'를 주문하면서 지난달 28일 그룹이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 추진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사진은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 앞. [사진=연합뉴스 제공]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결국 '소송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현대자동차의 지배구조와 주주환원 정책에 개입한데 이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한국 정부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며 투자자-국가간 소송(ISD)까지 추진하는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서는 모양새다.

'골칫거리'로만 치부해온 외국 투기자본에 그야말로 놀아나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지배구조가 취약한 국내 기업의 현 상황에, 정부마저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흔드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외국 투기자본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자 엘리엇이 이를 이용해 무차별 공격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빌미 제공?

재계에선 엘리엇이 ISD에 나설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 사실상 정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엘리엇이 지난달 13일 법무부에 제출한 '중재의향서'의 골자는 이렇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해 삼성물산 주주로서 합병에 반대한 자신들이 손해를 봤다는 것.

당시 엘리엇은 합병에 반대하며 삼성물산 주주총회 결의를 금지해 달라고 국내 법원에 가처분 신청 등을 냈지만 기각된 바 있다.

문제는 '국정농단 사태' 이후다. 중재의향서의 내용 자체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삼성의 합병을 돕기 위해 국민연금을 상대로 직권을 남용했다는 '국정농단' 특별검사팀과 법원의 1·2심 판단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복지부 적폐청산위원회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을 '청산해야 할 적폐'로 규정하기도 했다.

정부 스스로 적폐로 규정한 마당에 외국 투기자본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 이는 곧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특히나 국정농단 관련 재판에서 국민연금이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결론지은 만큼 ISD가 추진될 경우 한국 정부는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엘리엇이 이처럼 ISD를 추진하며 향후 현대차와의 본격적인 분쟁이 진행될 경우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였다는 판단을 내놓고 있다.

◆빈틈 노린 외국 투기자본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과 더불어 새로운 규제환경이 조성될 경우, 국내 기업들을 노리는 제2, 제3의 엘리엇이 등장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나 총수 기업들을 중심으로 앞다퉈 지배구조 변화에 나서고 있는 시기인 만큼, 소수 지분을 보유한 외국 투기자본에게도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투기 자본 의도대로라면 경영권 장악은 물론 최소한 주가 변동을 통한 시세차익 실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이 상법 개정 움직임에 맞춰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요구한 것 역시 국내 기업 경영권에 간섭해 실익을 챙기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최근에는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 역시 의결권 행사 지침을 수정, 집중투표제 찬성 근거를 마련해 엘리엇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줬다.

최준선 한국기업법 연구소 이사장은 "정부에서 지배구조 개편을 명분으로 상법 개정 등 압력수위를 갈수록 높여가고 있는데 이는 기업을 완전히 무장해제하고 국제적 기업 사냥터에 내던지는 꼴"이라며 "한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데 있어 정부의 정책 변화는 상당한 리스크"라고 말했다.

실제로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이 담긴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가 도입되면 외국계 투기자본이 연합해 10대 기업(공기업 및 금융회사 제외) 중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기아차, SK이노베이션, 현대모비스 등 여섯 곳의 감사위원을 모두 장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투기 자본의 기업 장악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큰 것이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상법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국내 기업에 역차별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지금도 국내 대표 기업은 외국인 지분이 많아 경영권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상법 개정안이 도입되면 해외 투기 자본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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