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있어.”
휠체어를 탄 딸을 보고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다섯 번이나 이렇게 반복해 말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죄송해요. 몸만 크지 6살이나 다름없어서요”라며 사과했다.
기분이 어땠냐는 질문에 딸은 “몰라서 그런 건데 뭐. 초등학교 저학년 애들도 큰 소리로 ‘저기 장애인 간다’ 이렇게 말하는 걸. 잘 몰라 그런 걸 어쩌겠어. 그런데 엄마,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면 더 속상해”라고 말했다.
그동안 얘기를 들어보니 학교 보안관 할아버지께서 딸이 방송 댄스를 한다고 하니 “(휠체어 탄) 네가 춤을 출 수는 있어?”라고 물어보신 모양이다. 내심 속이 상했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 항상 휠체어를 타는 딸은 ‘다름’을 보는 눈이 있다. 지능이 14세가 아니라 6세인 그 여자아이나, 걷는 대신 휠체어를 타는 자신이나, ‘40대 한국 여성’인 엄마는 각각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라 전혀 다를 게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휠체어 눈높이에서 맞닥뜨린 세상은 너무 불편하다는 게 문제다. 문턱, 계단, 휠체어 눈높이에서 볼 수 없는 각종 대중교통 표지판들이 불편함의 증거다.
장애인콘텐츠제작협동조합 무의가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지도를 2년째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하나 있다. 지도를 만들기 전 ‘환승지도 리서치’ 과정에서 비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단 1시간 정도만 휠체어를 타도 눈높이가 확 달라지고 시야가 넓어진다. 장애인 전용 지도가 필요 없으려면 이렇게 ‘다른 눈높이’에 있는 비장애인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
이를 잘 아는 딸은 휠체어를 탄 자신의 눈높이에서 또 다른 발달장애의 눈높이로 이동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딸의 ‘다른 눈높이’ 덕분에 필자도 예전에는 그냥 지나치던 말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종영된 ‘MBC 무한도전’에서 개그맨 정준하씨가 보여준 주요 캐릭터는 ‘동네 바보 형’이었다. 과거에도 흔하게 보던 코미디 소재 중 하나가 영구, 맹구 같은 동네 바보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들은 모두 발달장애인이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코미디 소재가 돼 있다. 이런 대중문화는 은근하고 깊게 침투해 우리의 생각을 장악한다. 지하철에서 어떤 단어를 반복하는 발달장애인에게 눈살을 찌푸리거나, 교실에서 이런 아이들이 왕따 당하고 놀림을 당하는 걸 당연시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비장애인들이 1시간 휠체어를 타 보면 그 눈높이가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한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발달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래서 만든 게 필자가 재직 중인 이베이코리아 오픈마켓 옥션의 장애용품코너 ‘케어플러스’다. 특히 올해 장애인의 날을 맞아 ‘따뜻한 이해’라는 발달장애 상품관도 개설했다. 상품을 통해 발달장애를 제한적으로나마 일반인들도 이해해 보자는 취지였다.
따뜻한 이해에서는 일반적인 자극에도 쉽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소리를 지르거나 불안행동을 계속하는 자폐나,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소위 ‘상동행동’으로 인한 발달장애인의 스트레스 완화 상품을 모아서 판매 중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해 쉽게 쓰여진 책을 제작하는 ‘피치마켓’과 함께 발달장애 이해도서를 필요한 분들에게 기부하는 행사도 열었다.
이 코너를 열기 위해 많은 발달장애인 부모님들의 도움을 받았다. 24시간 아이에게 거의 매달려 있다시피 해 여느 엄마처럼 한가하게 쇼핑하기도 힘든 이들은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 싶으면 ‘해외직구’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그런데 발달장애 용품 중 국산을 팔고 싶었지만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예전에는 몇몇 업체가 있었는데 결국 수지타산을 맞추지 못해 생산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이 코너를 연 후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란 책을 쓴 발달장애아 엄마 류승연씨가 전해온 감사의 말씀을 잊지 못한다. “이제야 비로소 발달장애인도 당당한 소비자의 한 축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서 좋아요.”
휠체어 눈높이로 이해하는 것. ‘열등한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정체성일 뿐’이라고 장애를 이해하는 순간,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시야의 첫걸음이 시작된다. 어쩌면 이것은 그동안 ‘단일 민족, 가부장적 유교 문화’ 등 획일화로 대표되던 한국 사회 안에서 모래알만큼 많은 다양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국가경쟁력도 담보하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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