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잔업시간을 제한하고, 일한 시간이 아닌 성과로 근로자를 평가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 법안이 지난 6월 29일 일본 참의원 본회의를 통과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법안이 통과하자 “70년 만에 이룬 대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통과된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법은 대기업이 2019년 4월, 중소기업은 2020년 4월부터 적용된다.
일본정부는 자국 기업이 미국과 유럽기업에 비해 노동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통계와 보고서가 잇따라 나오기 시작한 3년 전 법제정에 착수했다. 3년 동안 ‘일하는 방식 개혁’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다보니 기업들이 다양한 시도를 통해 맞춤형 대책을 내놓을 수 있었는데, 대표적인 대책이 바로 ‘부업의 활성화’다.
◆ ‘일하는 방식 개혁’의 원조 파나소닉
1965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한 전자업체 파나소닉이 ‘일하는 방식 개혁’의 선봉에 섰다.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쳐 다양한 대책을 시행 중이다.
파나소닉이 내놓은 대책은 ‘사외유직(社外留職)’과 ‘사내부업’이다. 사외유직은 한 달에서 1년정도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는 제도다. 사외유직의 조건은 입사 4년차 이상이다. 파나소닉과 자본관계가 전혀 없는 회사라도 상대 회사가 받아주면 유직이 가능하다. 잠시 본업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기업에 근무하면서 터득한 경험을 임직원들이 본업에 복귀한 뒤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사내부업은 계장 이상의 임직원이 대상으로, 현재 소속된 부서와 다른 부서 업무를 겸직하게 하는 제도다. 부서 업무 분담은 상담을 통해 정할 수 있다. 예컨대 제품개발 담당자가 영업 부문을 겸직하는 식이다. 임직원들이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 회사에도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파나소닉이 추진하는 사외유직과 사내부업의 특징은 회사의 인사명령에 따른 이동과 겸직이 아니라 임직원이 스스로 결정한다는 점이다. 자기자신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임직원 스스로가 부업을 결정할 수 있다.
일본에서 처음 도입된 파나소닉의 주5일 근무제는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가 “국제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도 미국처럼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시작했다. 파나소닉의 전신 ‘내셔날(National)'이 제조한 가전제품은 주부들의 가사 노동시간을 단축시키는 데 기여해 여성의 사회진출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일본정부가 실시한 사회생활기본조사에 따르면 가사 노동시간은 40년 전에 비해 20% 감소했다. 파나소닉이 ’일하는 방식 개혁‘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스타트업 상대로 부업하는 대기업 임직원들
본업에서 터득한 업무 노하우를 부업에 활용하려는 대기업 임직원이 늘고 있다. 활용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IT뿐만 아니라, 영업과 법무, 경리 업무까지 폭넓다. 잔업이 제한되면서 줄어든 수입을 보완하고,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공헌하기 위해 부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IT기업에서 근무하는 30대 남성이 주말을 이용해 스타트업을 상대로 부업을 시작했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이 남성은 IT기업에 다니며 터득한 노하우를 스타트업에 전수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얻고 있다. 부업으로 버는 수익은 월 300만~400만원에 달한다.
또, 전자업체 법무부서에서 일하는 한 남성은 한 달에 두 번 과자업체에 해외진출에 필요한 지적재산권 보호 지식과 모방제품 대책을 전수하며 한 달에 300만원의 수익을 얻고 있다.
현재 일본 직장인의 부업인구는 약 744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직종별로는 영업부문이 가장 많다. 전문분야로 특화해 부업을 중개하는 사업자도 늘고 있다.
◆ 대기업 “부업해도 됩니다”, 정부 “인력부족 해소 기대”
일본정부는 부업이 늘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만성적인 인력부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인력이 부족하다고 대답한 대기업의 비율은 지난해 11월 27%를 기록한 반면, 중소기업은 50%를 넘어섰다. 민간업체 조사에 따르면, 내년 대학 졸업 예정인 학생 1명에 대한 기업의 구인 수는 중소기업이 9.91배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구직자들의 대기업 지원이 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사진기 및 복사기 제조업체 코니카미놀타와 게임업체 세가사미홀딩스 등 대기업들도 임직원의 부업을 허용하는 추세다. 특히 세가사미홀딩스는 약 3700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부업을 허용하면서 "본업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경험과 기술을 획득하면 개개인의 능력을 더 키울 수 있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신세이은행(新生銀行), 로토제약, 유니참, 모바일 게임업체 디엔에이(DeNA), 소프트뱅크 등이 부업을 허용했다.
일본정부는 잔업시간이 줄면서 시간적 여유가 늘어난 대기업 인재들이 부업을 통해 인력부족에 허덕이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인력을 대체할 수 있게 되면 고용 미스매치의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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