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9일(이하 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브렛 캐버노 판사를 미국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했을 때만 해도 공화당은 신속한 인준을 자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버노를 “흠잡을 데 없고, 누구에게도 뒤질 게 없는 공정한 판사”라고 극찬했고 공화당은 두 달 정도면 인준을 마무리하고 대법원의 보수 우위를 굳힐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약 세 달이 지난 현재 캐버노의 인준 여부는 미국 정가의 뇌관으로 부상했다. 캐버노의 성폭력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면서다. 미국 유권자들은 대법관 인준을 헬스케어나 경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 유권자 최대 관심사는 ‘대법관 인준’
미국 주요 언론의 톱뉴스는 캐버노 성추문과 그에 따른 여야 공방이 사실상 점령했다. 유권자들 사이에서 대법관 인준이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는 조사도 나왔다. 미국 온라인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지난주 공개된 퓨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유권자 중 76%는 대법관의 인준이 중간선거에서 “무척 중요한 이슈”라고 답했다. 그간 유권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던 헬스케어(75%)나 경제(74%) 이슈를 넘어서는 것이다.
캐버노 성추문이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치적'도 좀처럼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자유무역협정 개정안에 서명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타결하는 등 주요 동맹국들과의 무역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한의 비핵화 협상도 재개를 본격화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이 국내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빛이 바랬다고 지적했다.
캐버노를 둘러싼 성폭력 의혹은 강간 미수에서 신체 노출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섯 건이다. 그러나 캐버노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열린 상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캐버노는 “신께 맹세한다”면서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무고’가 자신과 가족의 명성을 완전하게 짓밟았다고 항변하면서 사퇴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날 청문회에는 10대 시절 캐버노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 했다고 주장한 크리스틴 포드 교수도 증언에 나서며 진실공방을 벌였다.
미국 여론은 양분됐다. 청문회 직후 실시된 유고브의 여론조사에서 포드 교수의 증언을 믿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41%였다. 그러나 캐버노를 믿는다고 답한 응답자도 35%에 달했다. 미국 공영언론 NPR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캐버노 지명을 반대한다는 응답이 43%, 지지한다는 응답이 38%을 각각 기록하면서 뚜렷한 분열상을 보였다.
다만 여성 유권자들의 표심은 상당히 기울어진 모습이다. 퓨리서치 조사에서 여성 응답자들 중 58%는 민주당 후보를 뽑겠다고 말한 반면 공화당을 뽑겠다는 응답자는 35%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버노 성추문을 민주당의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면서 지지층의 표심을 단속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서 열린 공화당 집회에서 "캐버노에 대한 찬성표는 민주당의 무자비하고 터무니없는 계략을 거부하는 투표"라며 의회에 인준을 압박했다. 백악관은 캐버노를 대체할 다른 옵션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악시오스는 보도했다.
캐버노 인준안은 지난달 28일 1차 관문인 법사위를 통과했다. 남은 관문은 상원 전체 표결이다. 그러나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요구로 FBI에 캐버노에 관한 추가 신원 조사를 지시했는데, 백악관의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FBI가 백악관의 지시에 따라 소수의 참고인에 대해서만 대면조사로 마무리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민주당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 트럼프 둘러싼 정치적 잡음 계속
캐버노 성추문에 다소 가려지긴 했으나 백악관의 난맥상과 러시아 스캔들 등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잡음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로버트 뮬러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총괄 지휘하는 로드 로즌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이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박탈을 모의했었다는 사실이 뉴욕타임스(NYT) 보도를 통해 밝혀지면서 충격을 던졌다. 앞서 워터게이트 특종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혼돈의 리더십'을 고발한 책 <폭로>나 백악관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 진행되고 있다는 익명의 NYT 칼럼과 비슷한 맥락의 소식이었다.
로즌스타인 부장관은 NYT의 보도를 부정하면서도 백악관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로즌스타인의 사의를 반려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의 책임자라는 이유로 ‘눈엣가시’로 여기던 로즌스타인을 경질할 경우 선거에서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편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를 이끌었던 폴 매너포트 전 선대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형량을 낮추기 위해 뮬러 특검에 적극 협조하기로 한 것은 언제든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을 위협할 리스크로 떠오를 수 있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이들은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성추문과 관련한 핵심 정보를 쥔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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