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간의 국정감사가 마무리됐다. 이번 국감을 통해 사립유치원의 운영비 남용 등 의혹이 드러나는가 하면,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의 고용세습 의혹도 불거졌다.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주경제 본사에 국감을 취재한 정치사회부 기자 4명이 모였다. 이번 국감에 대한 평가와 화제, 뒷얘기를 들어봤다.
올해 국감, 최대 이슈는.
조현미=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폭로한 사립유치원 비리다. 박 의원은 국회 후반기 소속 상임위 배분에서 남아 있기를 원했던 정무위원회에서 쫓겨나다시피 교육위로 이동하자마자 터뜨린 이 ‘한방’으로 단번에 ‘국감스타’가 됐다.
서민지=박 의원이 터뜨린 사립유치원 비리 이슈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다. 29일 문재인 대통령이 “아이들 피해 보면 단호히 대응한다"고 이야기하는 등 정책적 보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높게 평가한다.
김도형=박 의원이 폭로한 사립유치원 비리다. ‘미운 오리’였던 박 의원의 활약에 민주당은 당론으로 ‘박용진 3법’까지 발의하며 뒷받침에 나섰다. 자유한국당 등 야3당은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 고용세습 의혹에 대해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다만 고용세습과 관계없는 사진을 연관이 있는 것처럼 공개하는 등 ‘팩트 체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은영=단연 사립유치원 비리다. ‘사립유치원을 하면 3대가 먹고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뿌리 깊은 문제였다. 하지만 표를 의식한 지역구 의원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다. 오히려 일부 의원들은 사전에 박 의원을 만류하기도 했다. 그래도 박 의원은 용기를 냈고, 다행히도 국민들은 박 의원 편에 섰다. 그의 진정성이 통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치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준 이슈였다고 본다.
담당 상임위별 주요 쟁점은.
조=법제사법위는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농단 의혹이 초반 최대 화두였다. 후반부에는 사법농단 의혹을 다룰 특별재판부 설치 문제가 여야의 뜨거운 쟁점이 됐다. 여당은 설치 필요성을 강조한 반면, 야권은 사법독립권 문제를 거론하며 반대했다. 교육위에선 사립유치원 회계 비리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서=행정안전위 국감에서는 서울교통공사의 직원 친인척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고용세습’ 의혹이 주요 쟁점이었다. 한국당은 ‘가족 고용세습’ 의혹을 거듭 부각하며 민주당에 국정조사 수용을 재차 촉구했다. 농림축산해양수산위에선 ‘위기의 해운업을 구하라’가 이슈였다. 특히 해수부를 상대로 한 국감에서는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김=외교통일위와 국방위에선 정부의 평양공동선언과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 비준이 쟁점이었다. 한국당은 해당 선언이 헌법 60조 ‘안보에 관한 조약,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에 해당되기 때문에 국회가 비준 동의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민주당은 국가 간 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맞섰다. 정부는 지난 29일 평양선언을 관보에 게재했고, 한국당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국감 이후에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장=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에서는 ‘가짜뉴스’가 쟁점이었다. 민주당과 정부가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규제 대책을 마련하는 데 대해 야당에서는 정부 주도의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국감에 출석해 허위뉴스에 대처하겠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보건복지위에서는 ‘문재인 케어’가 도마 위에 올랐다. 문재인 케어는 비급여 진료를 획기적으로 줄여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자는 정책이다. 야당에서는 건강보험료가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했고, 여당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장 시선을 끌었던 증인은
조=문화체육관광위는 선동렬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증인으로 불러 관심을 모았다. 손 감독은 올여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의 야구대표팀 선발 때 병역미필 선수들에게 특혜를 줬다는 논란으로 국감 증인대에 섰다. 현직 국가대표 감독의 첫 국감 출석인 만큼 관심이 높았지만 질의 내용은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다.
서=산업자원통상벤처위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참고인으로 불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무리한 요구와 청탁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정유섭 한국당 의원은 “백 대표의 가맹점이 손님 다 뺏어간다”며 출점 제한을 요구했다 빈축을 샀다.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를 홍보하며 “여수에서 청년몰을 하는데 꼭 좀 와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김만태 현대상선 전무가 29일 농림축산해양수산위 종합감사에 출석했다. 정부의 해운재건 정책에 따라 1조원을 긴급 수혈받았지만 정작 유창근 사장은 출석하지 않아 질타를 받았다. 특히 자금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 묻는 말에 “제가 말씀드릴 내용이 아니다”고 말해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한 비판을 받았다. 또 이미 1조원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지속적인 지원을 바라고 있다”고 말해 여야 의원들의 헛웃음을 자아냈다.
장=요즘 이분, TV에서도 많이 보인다. 바로 이국종 아주대 중증외상센터장(외상외과 교수)이다. 이 교수는 보건복지위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열악한 국내 응급 의료 실태에 대해 호소했다. 닥터헬기가 정해진 위치에서만 이착륙할 수 있고, 무전기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앞서 해상 응급환자 구조훈련을 하는 내용의 KT 광고에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이 교수는 “광고를 찍어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무전기를 지원해준 것이 고마워 찍은 것”이라고 밝혔다.
조=문체위 소속 의원들의 옷차림이 국감 기간 내내 화제였다. 특히 손혜원 민주당 의원과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문화재청 감사날인 16일 한복을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서=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은 해프닝을 낳기 마련이다. 지난 18일 서울시청 로비에 난데없이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의원들이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규탄 기자회견을 위해 들이닥쳤다. 이를 막으려는 시청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국감장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행안위는 파행을 겪기도 했다. 파행 직전 자신의 질의순서였던 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은 “내 질의 때 정회하지 말라. 김성태는 원래 그런 인간이고 논할 가치가 없다”고 했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일부 보좌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김=국감 기간 내내 국감장 외부에는 각 부처 공무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서류뿐 아니라 프린터까지 들고 와 국감을 지원했다. 자리가 모자라다 보니 바닥에 앉아서 늦은 밤까지 기다리는 것도 다반사였다. 박스에 떡이나 과자 등 간식거리를 잔뜩 사 들고 옆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건네기도 한다. 국감 기간 중 점심시간엔 공무원이 너무 많아 국회 구내식당을 이용하기가 힘들 정도다.
장=기술이 발전하면서 국감에 등장하는 소품들도 다양해지는 모습이다. 과방위에서는 박성중 한국당 의원이 서비스용 로봇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가정용 인공지능 로봇을 데리고 나왔다. 이름은 ‘클로이’다. 박 의원이 시연을 하겠다며 ‘헤이 클로이’라고 수차례 외쳤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박 의원은 경남 남해 출신으로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당황한 박 의원은 “내가 사투리를 쓰니까 못 알아듣는 것 같다”고 말했고, 결국 뒤에 있던 보좌진이 작동시켰다. 박 의원은 클로이를 쓰다듬으며 “잘했어”라고 칭찬을 해 국감장에 웃음을 자아냈다.
국감 이런 것은 고쳐야.
조=여전히 증인에게 막말을 하거나 면박을 주는 의원이 많았다. 29일 문체위 국감에선 안민석 위원장이 테니스계 농단 의혹 증인으로 나온 곽용운 대한테니스협회장 발언을 번번이 잘라 질타를 받았다. 안 위원장이 “‘테니스계의 듣보잡’ 곽용운이라는 사람이···”라고 발언하자, 곽 회장은 격분하며 “내가 지금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손혜원 의원은 선동렬 감독에게 “근무시간이 어떻게 되느냐. 너무 편한 전임 감독 아니냐”고 지적했다 역풍을 맞았다. 박성중 한국당 의원은 양승동 KBS 사장의 노래방 출입과 관련한 질의를 하는 도중 “그 정도 기억이면 치매가 아니냐”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서=기획재정위는 가장 ‘핫한’ 상임위였지만 지나고 나니 별것 없는 상임위로 손꼽혔다. 소득주도성장 등 정부의 경제정책과 금리 인상 필요성 등을 두고 야당이 대여 공세를 예고했던 것과 달리 ‘한방’이 없는 밋밋한 국감으로 끝났다.
김=국감에서 증인들의 불성실한 태도는 항상 제기되는 문제다. 존 리 구글코리아 대표이사의 경우 한국어를 잘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영어로만 답변해 시간을 지연했다. 각 의원당 질의시간은 10분 정도로 통역 시간이 포함되면 실제로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줄어든다. 이런 부분을 고려한 의사일정 편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장=아무래도 ‘겉핥기’에 그쳤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 언론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감에 채택된 일반 증인 1998명 중 165명은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되돌아갔다고 한다. 출석한 증인들도 ‘이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답하는 경향이 많다. 이런 문제는 20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 700개가 넘는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현재의 국감 제도 탓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상시국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매년 나오고 있는데도 국회는 묵묵부답으로, 의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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