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속(44석)과 우등고속(28석) 정도의 차이다. 버스에 탑승할 정도의 인원은 되는 것 같다. 회장을 뽑는다는 말에 발이라도 걸치겠다는 인사들이 너무 많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뽑는다는 소식에 이력서를 들이미는 전·현직 금융권 인사들을 두고 정부 관계자가 쏟아낸 탄식이다.
내년 출범을 앞둔 우리금융지주 회장 선임 방식을 놓고 말들이 많다. 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그럴 필요 없다(겸임)는 의견이다. 현재까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겸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앞서지만 최종 결과는 미지수다.
논란은 금융당국이 키웠다. 우리은행처럼 민영화된 공기업은 정부 외에도 일반주주가 있고, 엄연히 이사회가 존재한다. 경영과 관련한 주요 사안들은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결정하면 된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주주라는 이유로 개입을 선언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우리은행 지분의 18%를 갖고 있는 정부가 당연히 지배구조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지배구조와 관련해 우리(정부)도 우리의 생각이 있고, 당연히 저희가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장은 즉시 우리금융 회장 선임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의사를 밝힌 것이고 새로운 관치라고 비난했다.
논란이 커지자 최 위원장은 일주일 후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누구를 회장이나 행장을 시키기 위해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진화했다.
그러나 최 위원장이 관치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은행 지배구조에 개입하겠다고 발언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회장직을 노리는 일부 인사들에게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는 분석과 실제 낙하산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과점주주들 입장에서는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과거에 이미 우리은행의 자율권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는 우리은행 지분을 매각하면서 경영자율권 보장을 전제로 과점주주 체계를 만들었다. 특정 대주주가 생기는 것을 차단하는 장점은 있지만, 사실상 집단지도 체제로 매각 지분의 가격이 오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율권 보장을 전제로 7개 기관투자가는 지분 29.7%를 총 2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키움증권(4%), 한국투자증권(4%), 한화생명(4%), 동양생명(4%), 유진자산운용(4%, 이후 2.5% 매각), 미래에셋자산운용(3.7%), IMM PE(6%) 등 7곳이다.
당시 금융위원회 수장이었던 임종룡 위원장은 "우리은행은 이제 정부 소유 은행이라는 굴레를 벗었다"며 "민영화한 우리은행의 자율경영에 대한 정부 약속은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원점에서 보면 최종구 위원장이 관여하겠다는 '우리은행 지배구조'는 현재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우리금융지주 시절에는 우리은행을 비롯해 광주은행, 경남은행, 우리투자증권, 우리카드, 우리아비바생명보험 등 16개 계열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카드 외에 딱히 존재감 있는 계열사가 없다. 관여할 정도로 지배구조가 복잡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금융 전체에서 우리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95% 이상인 것도 부담이다. 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분리해봤자 실익이 없고, 회장을 별도로 선임한다 해도 당분간 역할이 없다는 의미다.
우리금융지주 회장 관련 논란은 앞으로 일주일 후면 결판이 난다. 이달 7일 지주사 승인 직후 곧바로 임시 이사회를 열어 회장 선임 문제를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시 이사회에서 큰 틀이 정해지면 이달 23일로 예정된 이사회 전까지 회장 후보도 결정해야 한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금융권 관계자들은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회장과 행장의 역할을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다. 은행의 역할이 절대적인 상황에서는 회장의 역할이 한정되어 있고, 뽑았다고 해도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펼치는 현 상황에 대해 금융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은행 내부 문제로 소모할 체력이 남았다면 글로벌 시장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은행들이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세계 시장에 속속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국내 문제로 체력을 소비할 것이냐는 의견이다.
명분이나 자리가 아닌, 금융당국의 미래지향적이고 글로벌한 마인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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