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직접민주주의 시대] ① 20대 10명 ‘단톡방’서 법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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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영 기자
입력 2018-11-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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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주운전 사고' 윤창호씨 친구들, 단체 카톡방에서 법 만들어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과 지난달 부산 해운대에서 만취한 운전자의 차량에 치여 의식불명 상태에 이른 윤창호씨의 친구들이 지난달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음주운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편집자 주] 법을 만드는 입법(立法)은 이제 더이상 정부나 국회의원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는 시민이 주도적으로 법을 만들거나 바꾸는 새로운 트렌드(trend)가 자리 잡고 있다. 내 삶에 필요한 법이라면 누가 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만든다. 입법을 위한 플랫폼(platform)도 다양해졌다. SNS, 블록체인 등 IT와 정치가 만나면서 직접민주주의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국민도 법을 발의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체감하고, 저희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국회의 문을 두드려서 ‘주권이 국민에 있다’는 것을 일깨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뼈대로 하는 일명 ‘윤창호 법’을 만든 김민진씨(22)는 6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씨 등 친구 10명은 윤창호씨가 지난 9월 25일 새벽 부산 해운대에서 사고를 당한 뒤 병원에서 만났다. 이들은 뇌사 상태에 빠진 친구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먼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이들은 “음주운전에 관한 솜방망이 처벌 실태는 훗날 잠정적 피해자를 계속해서 양산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국가는 안일한 대처를 보이고 있다”며 음주운전 사고에 대한 양형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은 청와대 답변 기준(20만명 이상 동의)을 5일 만에 달성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공식 답변을 내놨다. 박 장관은 “법무부는 음주운전 범죄에 대한 엄벌 필요성과 해외 선진국에서의 입법례 등을 종합해 검토해서 국회에서 논의할 때 적극 지원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친구들은 직접 법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김씨는 “청와대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적극적인 답변이 나오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며 “국회에 청원을 넣어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10명의 친구들은 각자 역할을 나눠 법안 만들기에 돌입했다. 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참고 문헌과 해외 사례를 찾았다. 윤씨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일주일 동안 새벽까지 회의했다고 한다. 학기 중이라 부산에 오지 못하는 친구들은 카톡방을 통해 자료를 공유했다. 카톡방 이름은 ‘창호의 친구들’이다.

법안 발의를 위해 의원들에게 접촉했다. 우선 299명 국회의원 전원에게 메일을 보냈고, 사고가 발생한 지역구 국회의원인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에게도 연락을 했다. 하 의원이 흔쾌히 동의했다. 하 의원은 동료 의원 104명의 동의를 얻어 지난달 22일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친구들은 블로그를 개설했다.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과정을 공개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국회에 대한 불신에서 만들었다”며 “법이 어떻게 개정됐는지 국민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공유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5일 국회에서 윤씨의 친구들과 면담 자리에서 “흔히 이런 일을 겪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친구들이 윤씨 이름을 걸고 법을 발의한 것은 정말 용기 있는 행동”이라며 “정치인이나 기업인들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법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입법 자문 전문가인 이호영 법무법인 삼율 대표 변호사는 이날 아주경제와의 통화에서 “일반 시민들이 법안 발의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현상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다만 법안 심사 시 다른 법체계와 안 맞으면 통과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서 “법안 통과까지 고려해서 일반 시민들이 법안을 발의할 때, 대한민국 헌법 및 다른 법률과의 체계상 타당한 법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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