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융권에서 가장 큰 화두는 영토 확장과 그에 따른 '영토 전쟁'으로 꼽을 수 있다. 국내 9개 금융지주사의 자산 규모는 6월 말 기준 2006조원을 기록했다. 2016년 말 1679조원에서 326조원이나 늘었다. 금융지주사들이 비은행 부문 강화를 위해 보험·증권사 등 M&A에 공격적으로 나선 결과다.
최근 몇 년 동안 비은행 부문 M&A를 통해 몸집을 키운 대표적인 곳은 KB금융지주다. 2014년 우리파이낸셜(현 KB캐피탈)을 시작으로 2015년 LIG손보(현 KB손보), 2016년 현대증권(현 KB증권)과 현대저축은행을 연달아 인수했다.
그 결과 KB금융지주는 지난해 말 기준 자산과 순이익 측면에서 신한금융을 제치고 금융지주 가운데 1위에 올라섰다. 자산은 436조7856억원으로 신한금융보다 10조원 이상 많았고, 순이익도 3조3434억원을 기록해 3조원을 넘지 못한 신한금융을 따돌렸다.
2008년 이후 줄곧 금융지주 1위를 지켜온 신한금융지주도 즉각 변격에 나섰다. 올해 하반기에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와 아시아신탁을 잇달아 인수했다. 오렌지라이프의 자산 규모가 31조원을 넘어 하반기에는 리딩뱅크 자리를 탈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2년 굿모닝증권(현 신한금융투자), 2003년 조홍은행(현 신한은행), 2007년 LIG카드(현 신한카드) 등 대형 매물을 인수하며 성장해 온 신한금융의 M&A 본능이 11년 만에 다시 살아난 셈이다.
상황이 이렇자 KB금융도 재반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실제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지난해 11월 다소 취약한 면이 있는 생명보험 부문 강화를 위해 M&A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당장 M&A 시장에 대형 매물이 없어 큰 움직임이 없으나 조만간 새로운 빅딜을 실현할 것으로 보인다.
◆ 금융지주, 비은행 부문 확장에 올인
다른 금융지주도 신한·KB금융의 독주를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최근 인가 절차를 마무리한 우리은행은 내년 1월 금융지주체계로 다시 전환하면 비은행 부문 M&A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도 보험이나 증권사 인수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당분간 금융지주사의 영토 확장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영토 확장은 단순히 '덩치싸움'식 1위 경쟁을 위해서가 아니다. 은행 부문에 지나치게 집중된 지금의 사업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절박한 속내가 숨어있다.
2016년 이전 금융지주 자산 중 은행의 비중은 80%를 넘는다. 금융지주 계열사 순이익 기여도를 살펴봐도 은행이 60%를 웃도는 수준이다. 장기적으로 저출산·저성장이 예고된 상황에서 언제까지 예대마진 중심의 은행 부문이 호황을 지속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때문에 국내 금융지주는 미국 등 금융선진국처럼 비은행 부문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영토 확장이 진행되고 있다. 1년 반 동안 M&A에 노력한 덕에 금융지주 자산 가운데 은행의 비중은 65.2%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로 인해 과거 '구색맞추기'식으로 보유하고 있던 금융지주계열 비은행 부문 금융사의 위상과 업권 내 지배력도 대폭 제고됐다.
◆ 은행에 인수된 후 경쟁력 크게 강화
몇 년 전만하더라도 농협생명을 제외하면 생명·손해보험사 '빅5'에 금융지주계열 보험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2015년 KB손보가 재출범하면서 성공적으로 위상을 강화했다. 생명보험 부문에서도 최근 신한금융으로 인수된 오렌지라이프와 기존 신한생명이 시너지를 낸다면 충분히 5위권 이내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캐피탈 부문도 산업계열사가 강한 현대캐피탈과 아주캐피탈이 1, 2위를 독식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금융지주계열 캐피탈사가 힘을 쓰지 못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KB캐피탈이 고속성장을 거듭한 끝에 지금은 아주캐피탈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자산규모 4위와 5위인 JB우리캐피탈과 하나캐피탈도 각각 J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에 소속돼 있다. 지금은 6위로 떨어진 아주캐피탈도 우리은행이 금융지주로 전환하면 계열사에 편입될 예정이다. 상위권이 대부분 금융지주계열사로 채워지는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과거 상위사였던 현대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한 KB금융지주와 농협금융지주 계열사가 새로운 빅5 구성원에 포함된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금융사가 등장하기 위해서 금융지주가 덩치를 키우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며 "최근 금융 환경이 금융업권간 교류 수준을 넘어 융합 단계로 가고 있는 것도 금융지주가 M&A에 힘을 쏟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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