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죽을 것 같습니다. 정부 입만 바라보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최근 만난 암호화폐 거래소 팀장은 1시간 가까이 한숨만 내쉬었다.
명문화된 규제 하나 없이 구두로 내려진 정부의 암호화폐공개(ICO) 금지령에 손발이 묶여 답답한 곳은 비단 이 곳만이 아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암호화폐 거래소와 블록체인 업체들 사이에서는 이미 1년 넘게 '곡소리'가 나오고 있다.
단순히 사업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1년 동안 고급인력들의 발길이 끊겼고, 자본금도 바닥이 났다. 미래를 준비할 여력조차 남지 않았다. 그나마 해외로 나가면 어느 정도 청사진을 그릴 수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업체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뚜렷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관심으로 블록체인 산업 자체가 죽어가고 있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경제부총리로 내정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당초 국조실은 이달 중 ICO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형욱 신임 국무조정실장이 "(암호화폐 가이드라인을) 재촉하거나 서두르지 않는 게 도움이 된다"며 다시 한 번 지나치게 신중한 정부 입장만 확인했을 뿐이다. 정부의 입장 발표는 올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적자 상황에서도 '정부 발표를 일단 기다려보자'던 업체들은 어느새 포기 상태가 됐다. 기약 없는 ICO 발표를 기다리느니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이 빠르다고 판단한 일부 업체들은 거래소공개(IEO), 증권형토큰발행(STO) 등 ICO를 대신할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책들도 정부의 무관심 아래서는 일회성 방편에 불과하다. 블록체인업체에 가장 기본적이면서 절실한 수단인 ICO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사업도 제대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자 국내 블록체인 산업을 죽인 것은 정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규제안 마련이 시급한데도 뒷짐만 지면서 수많은 '골든타임'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정부의 무책임한 침묵은 미래 먹거리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수 인재들이 한국을 떠나고, 정부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정부는 스스로가 '침묵'이라는 이름으로 스타트업과 고급인재들의 무한한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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