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클림트 엔곤쉴레 훈데르트바서가 만든 40분이 40일 같은 여행"..제주 빛의 벙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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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 기자
입력 2018-11-2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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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벙커: 클림트'전 제주 서귀포서 11월 16일~2019년 10월 27일까지

  • -프랑스 이어 3번째 '아미엑스' 전시관 한국 상륙

  • -박진우 티모넷 대표 "미술품을 빛과 음악과 큰 영상으로 한꺼번에 체험하는 새로운 전시"


제주국제공항에서 차로 약 1시간 10분 거리인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차를 타고 국도를 벗어나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마치 군사 시설처럼 보이는 '빛의 벙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내버스 정류장도 없는, 제주도에서는 나름 오지인 이곳에 프랑스에서 대박을 터트린 차세대 비디오아트가 온다고 해서 지난 15일 찾아갔다.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 '롱쇼'에 나온 클림트 작품 이미지]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 아미엑스(AMIEX) 전시관 '빛의 벙커(Bunker de Lumieres)'가 지난 16일 개관했다. 첫 전시작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서거 100주년을 맞아 클림트의 황금빛 작품들로 구성된 '빛의 벙커: 클림트'를 2019년 10월 27일까지 선보인다.

▶비밀 통신 벙커가 '빛의 벙커'로 태어나다

'빛의 벙커'가 있던 곳은 약 30년 전에 국가 기간 통신만을 운영하던 비밀 벙커였다.

케이티(KT)는 이곳에서 한국과 일본을 잇는 해저광케이블 중계국을 설치하고, 이곳을 관리했다. 국가 기간시설이다 보니까 군인들이 경비를 섰다.

모바일시대에 이르러 더는 쓸모가 없어진 통신 벙커는 10년 정도 방치돼있다가 국가자산매각 관련으로 경매를 통해서 2012년 민간에 매각됐다.

박진우 티모넷 대표가 4년 전인 2014년에 프랑스 남부 레보드프로방스 지역에 갔을 때는 예술 전시 공간 통합 서비스 기업인 컬처스페이스(Culturespaces)가 몰입형 미디어아트 아미엑스를 설치한 지 1년이 된 시점이다.

박 대표는 '아미엑스'를 한국에 들여오기 위해서 전국을 돌며 지자체들과 협의 했고, 2년 전에 버려진 통신 벙커를 발견하고 1년간의 타당성 검토와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프랑스에 있는 2곳에 이어 세 번째, 프랑스 외에는 첫 번째 '아미엑스' 전시관을 개관했다.

[박진우 티모넷 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박진우 대표는 "아미엑스 전시는 원래 전통적으로 미술품을 관람하던 미술관에 가서 액자에 걸려 있는 그림을 감상하는 방식을 뛰어넘었다" 며 "우리가 아는 예술품을 빛과 음악과 큰 영상으로 한꺼번에 체험함으로써 그 현장에 몰입돼서 감상하는 쪽으로 제작이 된 형태의 새로운 전시"라고 설명했다.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가 열린 빛의 벙커 입구]


'빛의 벙커'는 과거 통신 벙커 모습을 그대로 살려놨다.

조그만 야산처럼 보이는 벙커는 미사일을 맞아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두꺼운 옹벽으로 보호돼있고, 전시장 입구와 출구에는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녹슨 철문이 큰 입을 벌리고 있다.

빛과 소리가 완벽하게 차단된 벙커 안은 사계절 내내 평균 기온은 섭씨 16도를 유지하고 있는 쾌적한 공간이다.

박 대표는 "프랑스 컬쳐스페이스사가 와서 컨설팅했을 때 벙커의 모습을 보고 '너무 아름답고 멋지다. 최대한 옛날의 모습을 살렸으면 좋겠다'라는 의도를 줬다"고 말했다.

외부는 통신 벙커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했고 내부는 리모델링을 통해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서 여러 가지 시설을 설치했다.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 '롱쇼'에 나온 클림트 작품 이미지]


▶프랑스 감성 '아미엑스', 한국서 통할까?

아미엑스는 프랑스의 컬처스페이스사가 개발한 미디어아트 기술로, 100여 개의 프로젝터와 수십 개의 스피커를 설치하여 각종 이미지와 음악을 통해 완벽한 몰입형 전시를 제공한다.

관람객은 거장들의 회화세계를 자유롭게 거닐며 작품을 시각, 청각,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빛의 벙커'의 경우 면적 2,975㎡(900평), 높이 5.5m이며, 7400 안시루멘(화면 각 구역의 밝기)의 고화질의 프로젝터 90대와 고성능 스피커 69대를 설치해서 영상과 함께 웅장한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다.

참고로 프랑스 남부 레보드프로방스 지역에 설치한 첫 번째 아미엑스 전시관인 '빛의 채석장'은 면적 7,000㎡, 높이 7~14m이며, 프로젝터 100대, 스피커 26대가 설치되어 있다.

두 번째 아미엑스 전시관인 프랑스 파리의 '빛의 아틀리에'는 면적 2,000㎡, 높이 10m로 프로젝터 140대, 스피커 50대가 설치되어 있다.

아미엑스 전시관의 프로젝트 렌즈는 3종류가 쓰인다. 2종류는 고화질로 벽에 투영할 수 있는 단초점 렌즈이고. 1종류는 바닥을 비추는 렌즈이다.

바닥에 사용하는 렌즈는 넓은 범위를 덮어야 하기 때문에 벽에 투사하는 렌즈보다 해상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제주도 '빛의 벙커'는 현존하는 가장 최신의 장비를 동원하여 프랑스 기술진들이 세팅한 최적의 상태이다.

아미엑스 기술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기둥이다. '빛의 벙커'의 경우 1㎡의 기둥이 27개가 설치되어 있다.

파리의 '빛의 아틀리에'는 기둥이 커서 기둥까지 프로젝트로 투사해 작품을 만들었지만, 제주도 '빛의 벙커'는 기둥 크기가 작아 피해 가는 기술을 사용했다.

박진우 티모넷 대표는 "기둥 전체를 투사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4~5배 프로젝터가 필요하다" 며 "프랑스 기술진들은 기둥에 투사하기보다는 흑경으로 반사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스며드는 느낌을 주고 나머지는 기술적으로 영상이 기둥을 피해가게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빛의 벙커'에서 작품을 감상해보면 기둥이 서 있다는 느낌보다는 그림자 모양으로 작품의 일부처럼 보인다.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 출구에 마련된 아트숍 상품들]


▶한국 관람객을 위한 큐브1, 거울의 방 큐브2, 환상의 메인전시장

두꺼운 철문을 지나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어둡고 긴 복도가 나온다. 입구는 블랙 콘셉트이며 어둠에서 빛으로 들어가는 공간이다. 어두워졌다가 전시장에서 영상, 음향과 함께 빛이 나오게 된다.

100m 길이의 전시장을 나갈 때는 아트숍으로 나가게 되고, 빛으로 나가게 되는 화이트 콘셉트이다.

전시장은 크게 큐브1, 큐브2, 메인전시장으로 구성됐다.

메인전시장은 벽에 프로젝트를 사용해서 영상을 투사하고 바닥에는 물결처럼 영상이 흘러 다닌다.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장인 큐브1에서 작품이 상영되고 있다.]


큐브1은 갤러리 방으로 프로젝트로 작품을 하나씩 소개하고 있다.

이날 방문했을 때는 건축가 오토 바그너가 지은 슈타인호프의 성 레오폴드 교회의 모습이 보였다.

큐브1은 프랑스에 있는 아미엑스 전시관에는 없는 한국 전시관만의 특별한 곳이다. 국내 관람객은 유럽의 건축이나 미술 작품에 익숙하지 않아 주최 측이 특별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큐브2는 사방에 거울이 부착된 미러룸이다. 천장에서 바닥에 빛을 쏴서 바닥에 있는 면이 사방의 유리에 빛을 반사하는 형식이다.

이날 전시장은 안전 필름을 붙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서 그 효과는 확인할 수 없었다.

아미엑스 전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천장의 높이이다. 천장의 높이가 5.2m인 '빛의 벙커'는 프랑스의 '빛의 채석장'(7~14m), '빛의 아틀리에'(10m) 보다 천장이 낮기 때문에 극적인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티모넷 측은 이것을 소리로 보완 했다.

"벙커를 검토할 때에 작가들과 프랑스 스템들이 다 와서 기둥과 높이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작가들이 하는 얘기는 오히려 밀폐돼있기 때문에 음악 소리가 굉장히 잘나고 기둥들은 일종의 회랑 같은 이미지를 내기 때문에 그것을 시나리오로 엮어서 새로운 콘텐츠를 구성했다."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 롱쇼 중의 1장 '비엔나의 신고전주의' 이미지]


▶클림트, 엔곤 쉴레, 훈데르트바서..40분이 40일 같은 여행

구성된 작품은 '롱쇼'라고 명명한 30분짜리와 10분짜리 '숏쇼'가 있고 이것들은 마치 옴니버스 영화처럼 차례로 연결돼 상영된다.

'빛의 벙커'가 주제로 하는 것은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와 클림트의 사상을 계승한 엔곤 쉴레(Egon Schiele),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등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롱쇼'는 총 6개 장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장인 '비엔나의 신고전주의'(5분 08초)에서는 궁정 화가였던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 1840~1884)와 젊은 클림트가 그린 그림이 빈 미술사 박물관과 함께 등장한다. 크림트가 제작한 부르크극장의 '디오니소스의 제단' 천장화도 확인할 수 있다.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 롱쇼 중의 2장 '클림트와 빈 분리파' 이미지]


두 번째 장인 '클림트와 빈 분리파'(4분 36초)에서는 클림트가 새로운 예술 창조를 목적으로 체제시온(Secession)이라는 분리파를 결성하면서 그들의 활동 거점들이 영상으로 보인다.

영상에는 비엔나 칼스플라츠역과 그곳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건축가 오토 바그너의 가장 유명한 작품), 프리즈 스토클레(Frise Stoclet), 스토클레 저택 벽화, 앙커인형시계(Ankeruhr Franz Matsch) 등이 등장한다.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 롱쇼 중의 3장 '클림트: 황금시기' 이미지]


세 번째 장인 '클림트: 황금시기'(8분 28초)에서는 분리파의 집 벽에 그린 그림과 클림트의 대표작이 소개된다. 키스(The Kiss)를 비롯해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Adele Bloch-Bauer), 다나에(Danae), 유디트(Judith), 기대(Expectation, 스토클레 저택 벽화 중)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 롱쇼 중의 4장 '클림트와 자연' 이미지]


네 번째 장인 '클림트와 자연'(3분 24초)은 클림트가 분리파와 결별한 후 건물, 꽃밭, 나무 등 색채를 더욱 풍부하게 쓴 풍경 작품으로 구성됐다.

사과나무(Apple Tree), 아테제 호숫가 운터아크성(Unterach Castle on the Attersee), 캄머성 공원으로 가는 길(Avenue in the park of Kammer Castle), 카소네의 교회(Kirche in Cassone), 정원이 있는 집(Das Haus von Guardaboschi) 등이 대표작이다.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 롱쇼 중의 5장 '에곤 쉴레' 이미지]


다섯 번째 장인 '에곤 쉴레'(2분: 52초)에서는 클림트에게 영향을 받은 에곤 쉴레의 작품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네 그루의 나무들(Four trees), 막스 오펜하이머의 초상(Portrait of the Painter Max Oppenheimer). 옷을 벗고 있는 여자(Woman undressing), 팔을 들고 있는 자화상, 뒷모습(Self portrait with Raised Arms, back view)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클림트 전시에 에곤 쉴레 작품이 등장하는 이유는 에곤 쉴레 작품 속에서 클림트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박진우 대표는 설명했다.

"쉴레는 그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몸을 장식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었고, 표현력이 풍부하고 불안감을 주는 다양한 포즈로 그것을 포착했다. 회화 기법, 그림자나 쉐이딩 없이 강한 색상을 결합하는 방법, 그리고 원근법을 거부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왜 클림트 주제에 에곤 쉴레의 작품이 들어갔는지 느끼실 수 있다."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 롱쇼 중의 6장 '클림트와 여성 : 색채의 향연' 이미지]


마지막 여섯 번째 장인 '클림트와 여성 : 색채의 향연'(7분 51초)에서는 클림트의 황금시기 이후에 여성들을 그림 작품이 등장한다. 여성들은 색으로 뒤덮여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존재감을 발산한다. 처녀(The Virgin), 여인의 세 시기(The Three Ages of a Woman), 여자친구들(The Girlfriends), 에밀레 플뢰게의 초상 (Emilie Floge portrait), 빨간 물고기(Red fish) 등의 작품을 엿볼 수 있다.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 숏쇼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 작품들] 


10분으로 구성된 '숏쇼'는 비엔나 출신 화가이자 건축가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nsreich Hundertwasser, 1928~2000)의 작품을 몰입형으로 보여준다.

바서 또한 클림트처럼 계획에 입각한 구도보다는 즉흥적인 선과 불규칙한 형태를 선호한 작가다. 기하학적 형태로 만들어진 창문들과 화려한 색채는 인간을 중심을 둔 자연을 모티브로 한 유토피아를 그려낸다.

영상에는 '우는 사람들을 위한 잔디'(Grass for those who cry), 발칸반도 너머 이리나랜드 (Irinaland over the Balkans), 큰길(the big way) 등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클림트와 훈데르트바서는 활동하던 시기는 다르지만, 분리주의를 시작했던 클림트를 현대에 계승한 작가가 훈데르트바서라는 것이 기획자의 의도이다.

['빛의 벙커: 클림트' 전시 출구에 마련된 아트숍 상품들]


이번 제주도 '빛의 벙커' 전시에서 클림트 작품 약 750점(2500개 이상 이미지), 훈데르트바서 작품 약 25점, 훈데르트바서가 설계한 건물 15개(125개 이상 이미지), 에곤 쉴레 작품 45점(85개 이상 이미지) 등을 감상하면서 마치 작품 속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닥에 일그러지는 이미지를 볼 때는 주변 색채에 압도당해 깊은 수렁에 빠진 것처럼 멀미가 날 때도 있었다. 이것은 밤에 홀로 발목까지 잠긴 강을 건너 본 사람은 그런 느낌을 금방 감지할 수 있다.

40분 동안 작품을 감상하고 아트숍으로 나올 때는 오스트리아 빈을 40일 동안 여행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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