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0시(이하 현지시간)를 기점으로 시작된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이 26일 자정을 넘기면서 엿새를 맞았다. 25일까지는 주말과 성탄절 연휴가 이어지면서 셧다운 영향이 미미했지만 26일 본격적인 정부 업무가 시작되면서 그 여파가 구체화되고 있다.
셧다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요구한 멕시코 국경 예산 50억 달러를 두고 상원에서 예산안 합의가 불발되면서 시작됐다. 얼마나 지속될지도 알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에 따르면 하원 의원들은 27일 예산안 표결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상원은 27일 오후 본회의를 예정하고 있으나 표결은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라고 더힐은 보도했다. 셧다운이 적어도 28일까지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더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은 셧다운이 올해를 넘길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현지 매체들은 연휴를 마치고 연방정부 업무가 시작되면서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그랜드캐니언, 뉴욕 '자유의 여신상' 등 미국 대표 관광지는 주정부 예산을 투입해 정상 운영되고 있지만 많은 국립공원이나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 농무부의 저소득층 식품 배급 제도인 ‘푸드 스탬프’도 인력 부재에 축소될 전망이다. 미국 국세청은 납세자 지원 창구를 폐쇄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법무부는 한 연방 판사에게 예산이 지원될 때까지 특정 사건을 일시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경제의 궤적을 기록하는 부처의 자료 발표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CNN은 상무부 소속 경제분석국과 통계국, 농무부가 발표하는 경제 지표는 업데이트가 중단됐다고 전했다. 단, 비농업부문 고용지표를 발표하는 노동부는 내년 9월까지 예산 편성이 완료되어 12월 고용지표가 예정대로 발표될 예정이다.
공화당의 제럴드 코널리 의원은 “연휴가 끝나면서 셧다운의 냉혹한 현실이 충격을 던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셧다운 영향에 놓인 연방 공무원과 그 가족들의 불만도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영향권에 놓인 공무원은 80만명에 이른다. 국방·치안·항공 등 필수 업무에 종사하는 45만명은 업무를 계속 이어가지만 급여는 셧다운이 해결된 이후에 받을 수 있다. 나머지 35만명은 강제 무급 휴직에 들어갔다.
국토부 직원을 남편으로 둔 마리아 올테가는 WP에 “아이러니한 것은 멕시코 국경장벽 때문에 생긴 셧다운 피해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에 풀칠할 사정은 아니지만 세차를 하고 커피를 사먹는 것까지 작은 지출도 두 번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80만명의 가계 예산 구멍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30년간 연구원으로 있는 폴 그린버그는 “모든 것이 멈췄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쓸모없는 기생충이 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셧다운 파장이 미국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WP는 셧다운이 세 가지 측면에서 다른 국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전 세계에서 미국 연방정부와 계약한 수천명의 외국 근로자들이 보수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아공에 파견됐던 전 미국 외교관인 존 캠프벨은 2011년 “개도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 대다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다. 급여가 끊기면 그들의 삶은 피폐해진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해외에서 근무하는 미국 외교관 대다수는 예산안 통과 후 밀린 보수를 받는다.
둘째는 업무와 관련이 있다. 국무부의 경우 여권과 비자 발급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업무를 계속할 수 있는 충분한 예산 여유가 있을 때”라고 조건을 달았다. 지난 22일 인도네시아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국무부는 현지 자국민에게 자카르타 주재 미 대사관의 트위터 지시를 따르라고 권고했으나 셧다운 기간 동안 이 트위터 계정은 안내가 몇 번이나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은 셧다운으로 미국의 평판이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WP는 전했다. 외국에서는 셧다운이라는 개념이 없는 데다 셧다운에 따른 미국의 혼란을 보면서 자국 시스템에 대한 자부심까지 느낀다는 것이다. 캐나다 신문 글로브앤드메일의 로런스 마틴 기자는 올해 1월 미국에 셧다운이 발생했을 때 “캐나다의 정부 시스템은 미국보다 우수하다. 증거가 필요하면 미국의 상황을 보라. 그런 혼란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 시스템에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적은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파장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은 멕시코 장벽을 두고 팽팽히 대치하면서 셧다운 장기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민 문제는 워낙 민감한 쟁점인 데다가 지금에 와서 누구라도 물러설 경우 ‘항복’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양쪽 모두 셧다운 장기화를 불사하고 있다.
26일 이라크 미군 부대를 깜짝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이 얼마나 지속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우리는 장벽을 원한다. 미국을 위해 안전이 필요하다. 남쪽 국경을 통해 테러리스트가 계속 유입되고 있다”면서 장벽 건설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러나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계획은 장벽 예산이 포함되지 않은 지출안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하원 주도권을 되찾는 내년 1월 3일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더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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