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호의 ‘정신적 지주’였던 기성용의 부상 공백은 컸다. 황인범이 태극마크를 반납하고 떠난 기성용의 빈자리를 채웠으나 중원을 책임질 수 있는 노련미에서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대표팀 선수들은 ‘맏형’ 기성용을 품고 뛰며 8강행 티켓을 따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3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라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바레인을 2-1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손쉬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힘겨운 진땀승이었다. 한국은 전반 42분 황희찬의 선제골로 리드를 잡았으나 후반 32분 모하메드 알로마이히에게 동점골을 헌납해 연장 승부를 펼쳤다. 한국은 연장전 전반 추가시간 김진수가 극적인 헤딩 슈팅으로 결승골을 터뜨려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날 한국은 기대 이하의 경기력이었다. 공격 전개는 느렸고, 잦은 패스 실수로 빌드업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후반전 바레인에 주도권을 내준 흐름도 좋지 않았다. 결국 다시 흐름을 가져오지 못한 한국은 동점골을 내주며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벤투 감독도 경기 직후 “앞선 경기보다 경기력이 나빴다”며 “실수도 많았고, 쉬운 패스도 끊겼다”고 만족하지 못했다.
약체 바레인을 상대로 전반적인 주도권을 잡고도 압도하지 못한 건 중원을 장악하지 못한 탓도 컸다. 경기의 흐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노련한 경기 운영이 아쉬웠다.
기성용의 부상 공백이 엿보인 장면들이다. 벤투호에 합류했던 기성용은 7일 필리핀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햄스트링을 다쳤다. 이후 현지에서 재활에 집중한 기성용은 결국 부상 악화로 21일 대표팀에서 하차하고 두바이를 떠났다.
기성용의 공백을 채울 것으로 기대했던 황인범은 조별리그 키르기스스탄과 중국전에 이어 16강 바레인전까지 경기 운영에 아쉬움을 남겼다. 아직 중원을 장악하며 팀을 이끌 수 있는 경험이 부족했다.
한국 선수들은 이날 골을 터뜨린 순간마다 세리머니로 기성용을 잊지 않고 기억했다. 황희찬의 첫 골이 터진 뒤에는 황인범과 함께 기성용의 등번호인 16번을 의미하는 손가락 16개를 펼쳐 보였고, 연장전 결승 헤딩골을 터뜨린 김진수는 벤치에서 기성용의 16번 유니폼을 받아 드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 유니폼은 손흥민과 지동원에게 전달돼 감동을 안겼다.
황의조는 바레인전을 앞두고 “기성용 선배는 팀의 중심이었고, 우리가 우승으로 보답하겠다”고 결의를 다졌고, 결승골의 주인공인 김진수는 경기 후 “(부상 하차가) 얼마나 큰 상처이고 아픔인지 알고 있어서 (기)성용이 형 몫까지 열심히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번 아시안컵에 더 이상 기성용은 없다. 기성용의 공백도 드러났다. 하지만 선수들은 기성용의 몫까지 뛰겠다는 투지를 불태웠다. 이날 바레인전에서 힘겹게 거둔 승리가 쓴 약이 될 수 있을까. 태극전사들은 이번 대회에서 기성용과 함께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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