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대법원 제3부는 유씨와 방송인 김용만씨가 케이앤피창업투자 주식회사(이하 케이앤피) 등을 상대로 낸 공탁금출급청구권확인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일부 파기 환송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유씨와 김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사건은 이렇다. 유씨와 김씨는 2006년 3월부터 약 5년간 연예기획사인 스톰과 방송 활동 전반에 대한 권리를 위임하는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한 기획사는 2010년 유씨와 김씨가 출연 중인 방송 프로그램의 출연료 등을 포함한 모든 채권을 케이엔피에 넘겼다. 이에 유씨는 당해 10월 스톰과 전속계약을 해지하고 MBC, KBS, SBS 등 지상파 방송3사에 밀린 출연료를 직접 청구하기에 이렀다. 당시 유씨가 지급 받지 못한 출연료는 6억원에 가까웠다. 그런데 방송사는 출연료를 유씨에게 지급하지 않고 법원에 공탁하는 걸 택했다. 기획사가 도산하면서 모든 채권자들이 출연료 채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 채권자와 방송인 중 누구에게 지급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유씨는 “방송출연계약은 도급계약의 일종으로 원사업자인 스톰으로부터 받아야 할 출연료를 지급받지 못했으니 하도급법에 따라 (방송사가)출연료를 직접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공탁금을 두고 기획사를 상대로 출연료 지급 등 청구소송을 냈고, 이에 승소했다. 그러나 공탁금에 권리가 있는 다른 채권자 전부를 상대로 한 확정 판결이 없어 출연료 지급을 거부당했다. 그러자 유씨는 “각 방송사와 출연 계약을 직접 맺은 건 자신들이기 때문에 공탁금을 출금할 권리도 본인들에게 있다”며 공탁금출급청구권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원심재판부는 채권자 손을 들어줬다. 유씨가 방송사와 직접 체결한 출연계약서가 없다는 점을 들며 ‘전속계약에 따라 출연계약 당사자는 방송인들이 아닌 기획사’라고 판단한 것이다. 1심은 “스톰이 유씨 등에게 용역을 재위탁했다고 볼 수 없고, 유씨 등이 출연료 채권을 청구할 권리자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 또한 소속사가 출연료 대리 수령권만 갖고 있다고 주장한 유씨의 주장은 양립하기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유씨, 김씨와 같은 유명 연예인은 출연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출연계약 당사자로 봐야 한다며 원고 패소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재판부는 “출연계약서의 내용, 출연계약 체결의 동기와 경위, 목적, 당사자의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해석해야 한다”고 전제하며 “전속계약에서 연예활동 수익금은 모두 스톰이 수령한 뒤 정산을 거쳐 유씨 등에게 지급하도록 규정하지만 수익금 수령 등 방법에 관해 합의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 방송사와 출연계약을 한 당사자가 스톰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쉽게 말해 기획사는 방송인과 방송사와의 출연계약 체결을 대행할 뿐, 실질적인 계약당사자는 방송인, 즉 유씨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방송에 유씨와 같이 인지도가 있는 특정 연예인을 출연시키고자 하는 출연계약의 목적에 비춰보면, 방송사로서도 전속기획사가 아니라 그 연예인을 출연계약의 당사자로 하는 것이 연예인의 출연을 가장 확실하게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 “이러한 출연계약의 특성과 계약 체결 당시 연예인으로서 유씨 등이 갖고 있었던 영향력과 인지도 등을 고려하면 방송3사는 연예인인 유씨 등을 출연계약의 상대방으로 해 직접 프로그램 출연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당사자 사이에 계약의 해석을 둘러싸고 다툼이 있어 계약내용에 관한 서면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약정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2. 13. 선고 2017다275447 판결 참조)는 종래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방송출연계약서 상의 당사자로서 유씨가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유씨가 가진 방송에 미치는 영향력과 대중 인지도 등이 계약체결의 주된 원인이자 계약의 목적이었음을 토대로 계약의 당사자가 유씨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유사한 사건에서 출연계약의 당사자를 연예인 등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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