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오는 27일 임기를 마치고 야인(野人)으로 돌아간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대선과 6·13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한 뒤 침몰하던 한국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 위원장은 취임 자체가 파격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살아오면서 내가 자유한국당의 비대위원장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을 정도다.
7개월 반 가량의 활동 기간 내내 크고 작은 이슈들의 중심에 섰다. 주재한 비대위 회의만 65차례에 달했다. 보수정당 역사상 비대위 활동기간이 가장 긴 축에 들었다. 이 때문에 임기 초부터 당 안팎에서 ‘김병준 체제’를 흔드는 시도들이 계속됐다.
진보진영에서는 ‘변절한 노무현의 남자’로, 보수진영에선 ‘당 정체성과 맞지 않는 인물’로 양쪽에서 거센 공격을 받았다.
김 위원장의 취임 일성은 ‘탈국가주의’였다. 이후 ‘먹방 규제’ 등 각종 이슈들을 던지며 당의 존재감을 살리는데 주력했다.
이어 ‘i-노믹스’, ‘i-폴리틱스’ 등 이른바 ‘i 시리즈’를 내놓으며 가치 재정립에도 공을 들였다.
첫 번째 위기는 지난해 9월 비대위가 당협위원장 일괄사퇴를 의결하며 찾아왔다. 외부위원이 주도하는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보수논객’인 전원책 변호사를 외부위원 위촉했으나, ‘인적 쇄신 권한’을 놓고 내홍을 겪은 끝에 한 달 만에 해촉됐다. 김 위원장의 리더십도 이때 가장 큰 상처를 입었다.
김 위원장은 25일 고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임기 동안 △가치 재정립과 인적쇄신 작업 △조강특위 구성 △임기 막판 ‘5·18 망언 논란’ △전당대회 후보들의 ‘보이콧’ 등을 가장 힘들었던 국면으로 꼽았다.
그는 “새로운 가치정당으로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신경을 쓴 것이 가장 중요했다”면서 “계파갈등을 줄이고 당내 시스템 혁신, 인적쇄신을 했지만 거대 정당이니 완벽하게 하지는 못했다”고 자평했다.
차기 지도부를 향해선 “우리 당의 변화 기류가 있고 저는 매일같이 느끼고 있다”면서 “당의 변화 기류들을 잘 읽어주고 사회 변화의 방향, 역사 변화의 흐름을 잘 따라가 줬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김 위원장은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도 당의 논란을 해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김진태·이종명·김순례 등 당 일부 의원들의 5·18 발언으로 촉발된 이른바 ‘우경화’ 논란이다.
평소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거의 없는 그도 지난 18일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는 “조용히 해달라”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굽이굽이 흐르는 물도 결국 앞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면서 “한국당이 극단적인 우경화의 모습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당은 그렇게 허약하지 않고, 지나친 주장이 있어도 다 용해될 수 있다”면서 “전당대회 대구·경북 연설회에서 조용히 하라고 고함을 지른 것도 그게 절대로 이 당의 주류가 될 수 없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을 괴롭혔던 태극기 세력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밖에서도 태극기 세력들이 많이 입당도 해줬고 태극기를 든 분들 중에도 여러 부류와 집단이 있다”면서 “그들과도 서로 가치를 공유해왔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이러 연대와 유대가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향후 자신의 정치 행보에 대해서는 “일단 비대위원장직을 내려놓지만 당이 원하는 만큼 저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당분간 저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느낀 한계를 바꾸는 기간을 가지려 한다”고 답했다.
이어 “당분간 몇 달 동안은 잊혀지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면서 “제 향후 행보와 관련해 총선, 대선 얘기를 하는 분도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정말 지금은 드릴 말씀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해 책을 쓰며 휴식의 시간을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거취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고별 기자간담회를 연 이날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는 ‘징검다리 포럼’ 발족식이 열렸다.
포럼 측은 이념·계파·세대 갈등이 극심한 한국사회에서 포럼이 통합의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 포럼은 김 위원장의 외곽 지지모임으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