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나무라는데
내겐 이게 밥그륵이여
다섯 남매 갈치고
어엿하게 제금냈으니
참말로
귀한 그륵이제
다순 그륵!
너른 바다 날 부르면
쏜살같이 달리구만이
무릎 하나 판에 올려 개펄을 밀다 보면
팔다리 쑤시던 것도 말끔하게 없어져
열일곱에 시작했으니 칠십 년 넘게 탄 거여
징그러워도 인자는 서운해서 그만 못 둬
아 그려, 영감 없어도 이것땜시 외롭잖여
꼬막만큼 졸깃하고 낙지처럼 늘러붙는/
맨드란 살결 아닌겨
죽거든 같이 묻어줘
인자는
이게 내 삭신이고
피붙이랑게
이지엽의 '널배'
널배는 꼬막 캐는 뻘배다. 진흙 개펄을 넓적한 뱃바닥으로 밀며 이동하는 미니 배다. 팔순 가까운 벌교아낙, 무릎 하나 판에 올려 개펄 밀다 보면 팔다리 쑤시는 것도 사라진다는 희한한 아스피린이다. 벌교 앞 여자만은 참뻘이라, 진흙의 질감이 꼬막처럼 쫄깃하고 낙지처럼 늘러 붙는 맨드란 살결이다. 꼬막은 11월부터 3월까지가 제철. 이 겨울 끝에도 아낙들 검은 흙 속에 피붙이처럼 붙어 있다. 저 배는 그대로 어느 삶의 '그륵'이기도 해서, 저기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다섯 남매 '멕인' 밥과 '갈친' 교육이 나왔고, 나라 꼬박꼬박 살린 세금이 나왔고, 온갖 생활비며 쌀값이며 약값이며 낼 돈 다 냈다. 저 그륵으로 칠십년 다 먹고살았지만, 아직도 그 그륵 멀쩡하다. 징그럽도록 붙어 살았지만, 이젠 영감보다 낫고 통째로 몸의 한 구석처럼 여겨져서 무덤까지 같이 가고 싶은 것이다.
살아온 일 돌아보면 저렇듯 애착이 들러붙은 '널배'가 있지 않은가. 삶의 그륵이기도 했거니와 땀과 눈물과 고통의 뱃바닥이기도 했던 생계의 갸륵한 밑천 하나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구둣방 아저씨든, 김밥 아줌마든, 손님 없는 서점 주인이라도 말이다. 팔순 아낙이 굽은 등 그대로 개펄가에 앉아 수굿이 바라보는 널배를 향한 시선 같은, 그 마음의 찰기 말이다.
이빈섬(시인·이상국 논설실장)
징그러워도 인자는 서운해서 그만 못 둬
아 그려, 영감 없어도 이것땜시 외롭잖여
꼬막만큼 졸깃하고 낙지처럼 늘러붙는/
맨드란 살결 아닌겨
죽거든 같이 묻어줘
인자는
이게 내 삭신이고
피붙이랑게
이지엽의 '널배'
널배는 꼬막 캐는 뻘배다. 진흙 개펄을 넓적한 뱃바닥으로 밀며 이동하는 미니 배다. 팔순 가까운 벌교아낙, 무릎 하나 판에 올려 개펄 밀다 보면 팔다리 쑤시는 것도 사라진다는 희한한 아스피린이다. 벌교 앞 여자만은 참뻘이라, 진흙의 질감이 꼬막처럼 쫄깃하고 낙지처럼 늘러 붙는 맨드란 살결이다. 꼬막은 11월부터 3월까지가 제철. 이 겨울 끝에도 아낙들 검은 흙 속에 피붙이처럼 붙어 있다. 저 배는 그대로 어느 삶의 '그륵'이기도 해서, 저기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다섯 남매 '멕인' 밥과 '갈친' 교육이 나왔고, 나라 꼬박꼬박 살린 세금이 나왔고, 온갖 생활비며 쌀값이며 약값이며 낼 돈 다 냈다. 저 그륵으로 칠십년 다 먹고살았지만, 아직도 그 그륵 멀쩡하다. 징그럽도록 붙어 살았지만, 이젠 영감보다 낫고 통째로 몸의 한 구석처럼 여겨져서 무덤까지 같이 가고 싶은 것이다.
살아온 일 돌아보면 저렇듯 애착이 들러붙은 '널배'가 있지 않은가. 삶의 그륵이기도 했거니와 땀과 눈물과 고통의 뱃바닥이기도 했던 생계의 갸륵한 밑천 하나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구둣방 아저씨든, 김밥 아줌마든, 손님 없는 서점 주인이라도 말이다. 팔순 아낙이 굽은 등 그대로 개펄가에 앉아 수굿이 바라보는 널배를 향한 시선 같은, 그 마음의 찰기 말이다.
이빈섬(시인·이상국 논설실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