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생전 3.5형 크기의 스마트폰을 고집했다. 그 이상이면 오히려 조작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의 스크린 또한 한동안 4형을 넘지 않았다.
지난 2011년에 삼성전자가 5.3형 크기의 '갤럭시노트'를 처음 공개했을 때도 잡스는 냉소적이었다. 그는 "아무도 사고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갤럭시노트는 예상을 보기 좋게 뛰어넘었다.
갤럭시노트는 휴대폰과 태블릿PC를 합친 '패블릿(Phablet)'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대화면 시장을 개척했다. 통신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용량 고화질 콘텐츠를 스마트폰에서 보고자 하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전용 스타일러스펜 'S펜'의 새로운 사용성도 매력적이었다.
이처럼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브랜드 '갤럭시'는 2010년 첫선을 보인 뒤 10년간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해 왔다. 단일 모델만 내놓았던 애플과 반대로, 플래그십 제품군 'S 시리즈'를 중심으로 고객의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라인업을 운영한 덕분이다. 갤럭시 라인업의 변화를 통해 스마트폰 시장 판도를 읽을 수 있는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2014년 무렵부터 본격적인 라인업 확대에 나섰다. 2014년 A 시리즈, 2015년 J 시리즈를 연달아 내놓았다. S 시리즈와 비교해 사양을 낮춘 대신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제품군이다. 프리미엄 제품을 중심으로 매년 성장세를 구가하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주춤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저가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70%가량에 달했다.
지난해 보급형 제품 재정비 과정에서 두 라인업은 A 시리즈 하나로 통합됐다. 화웨이, 오포,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턱밑까지 쫓아온 탓이다. 가격만으로 차별화가 어려워지자 프리미엄 기종에 준하는 성능을 갖춘 단일 중저가 라인업으로 승부를 걸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부터 석달 연속으로 갤럭시A7, 갤럭시A9, 갤럭시A8s를 연달아 내놓은 데 이어 올해 들어서는 무려 8종의 신제품을 쏟아냈다. 특히 11일 공개한 갤럭시A80의 경우 하나의 렌즈가 전후면 방향으로 회전하는 '로테이팅 카메라'와 풀스크린의 '인피니티 디스플레이'를 적용하는 등 S 시리즈보다 먼저 혁신 기술을 선보였다.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M 시리즈는 인도 시장의 전략적 중요도가 커졌음을 방증하는 제품군이다. 갤럭시 최초로 '노치 디자인'을 적용한 제품으로, 저가 제품을 선호하는 현지 소비자의 성향에 맞게 10만~20만원대로 설정한 가격대가 특징이다. 실제로 지난 2월 출시된 갤럭시M10과 갤럭시M20, 지난달 출시된 갤럭시M30 모두 온라인을 통해 완판될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현지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인도가 스마트폰 시장의 '블루 오션'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스마트폰의 성장을 이끌던 중국이 지난해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에도 -7.1%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글로벌 업체들은 인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인도 스마트폰 시장은 올해 16.0%로 3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률을 이어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보급형 시장에서의 주도권 확보와 함께 기술 격차 또한 늘려간다. 삼성전자는 지난 5일 세계 최초의 5세대 이동통신(5G) 스마트폰 갤럭시S10 5G를 정식 출시했다. 경쟁 업체들이 5G 스마트폰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리겠다는 전략이다.
이달 26일 미국에서 출시되는 접이식 스마트폰 '갤럭시폴드'를 통해 폼팩터 혁신 또한 예고한 상황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