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을 창립한 1969년은 인류가 달에 발을 디딘 해다. 선진국이 달에 도전할 때 동원은 바다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열심히 땀 흘리고 힘을 모은 결과, 동원은 1·2·3차 산업을 아우르는 6차 산업을 영위하는 크나큰 발전을 이뤘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16일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이같이 회고하면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그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1세대 창업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창업 세대가 명예롭게 자진 퇴진하는 사례는 그동안 거의 없었다.
이날 오전까지도 동원그룹 임직원 가운데 김 회장의 퇴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김 회장은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오랫동안 고민하다 퇴진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창업 세대로서 소임을 다했고, 후배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물러서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과 맞서 싸운 ‘마도로스(뱃사람)’ 출신다운 선택이었다고 평했다.
김 회장은 원양어선을 탔던 마도로스 출신이다. 우리나라 첫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유일한 실습항해사에서 약 3년 만에 우리나라 최연소 선장이 됐다. 그의 나이 30대 중반, 서울 명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직원 3명과 원양어선 1척으로 사업을 시작한 동원산업이 모태가 됐다.
수산업에서 자리 잡은 동원산업은 1982년 국내 첫 참치 통조림인 ‘동원참치’를 선보였다. 동원참치는 출시 이후 현재까지 62억캔이 넘게 팔리며 ‘국민식품’ 반열에 올랐다.
동원그룹은 1982년 한신증권을 인수하며 증권업에 진출했고, 이후 사명을 동원증권으로 바꿔 첨단 금융기법을 잇따라 도입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동원증권은 이후 동원그룹과 계열 분리되어 국내 최고의 증권그룹인 한국투자금융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2016년 동부익스프레스를 인수한 이후 동원그룹은 수산·식품·패키징·물류 4대 축을 바탕으로 지난해 기준 연 매출 7조2000억원에 달하는 기업집단으로 컸다.
이 같은 성장은 김 회장이 고집스럽게 지킨 정도경영이 뒷받침했다.
김 회장은 창립 이후 처음 적자를 냈던 해에는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일절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경영에만 전념했다. 1991년 장남 김남구 부회장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62억3800만원의 증여세를 자진해 내기도 했다. 당시 국세청이 "세무조사로 추징하지 않고 자진 신고한 증여세는 사상 처음"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원양어선 선장이던 시절부터 고향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던 김 회장은 창업 10년인 1979년 자신의 지분 10%를 출자해 장학재단인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했다. 동원육영재단은 40년간 장학금과 연구비, 교육발전기금 등 약 420억원을 인재육성에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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