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화창한 봄 날씨 속, ‘태조 이성계, 조선의 봄을 열다’를 부제로 펼쳐진 이날 회암사지 왕실축제에는 7만여 나들이객들의 발길이 종일 이어지며 역사와 문화, 쉼과 Healing(치유)가 공존하는 경기북부의 명품 축제로서 위상을 공고히 했다.
축제의 서막은 오전 9시 30분, 1호선 덕정역 앞에서 회암사지까지 약 4.3㎞구간에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재현한 태조 이성계의 회암사 행차모습, ‘왕의 행렬(King′s Parade)’이 펼쳐지며 그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태조 이성계와 왕비, 문무백관, 군사, 나인, 취타대 등 300여명과 말 5필로 구성된 어가행렬은 웅장한 광경을 연출하며 몇 세기를 거슬러 올라 관람객들을 조선시대로의 여행에 초대했다.
어가행렬을 맞으며 시작된 축제의 개막식에는 정성호 국회의원, 김대순 양주시 부시장, 이희창 시의회의장, 홍성준 양주문화원장, 도ㆍ시의원과 기관ㆍ사회단체장, 시민 등이 참석했으며 최용덕 동두천시장을 비롯해 강북구, 구리시, 도봉구, 중랑구, 여주시, 제주시 등 여러 국내교류도시에서 방문단이 찾아 회암사지 왕실축제의 개최를 축하했다.
특히, 이날 개막 축하공연에는 무예가 지닌 역사·문화적 가치와 유네스코의 평화 이념을 전달하기 위해 출범한 유네스코ICM 무예시범단의 초청 공연이 펼쳐지며 회암사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원했다.
축제장은 600여년전 태조 이성계와 왕사 무학대사가 오르내렸을, 역사가 살아있는 양주의 진산인 천보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왕실체험마당, 왕실힐링마당, 고고학체험마당, 지역체험‧홍보관, 유아숲체험장, 어린이놀이터, 파라솔‧돗자리 쉼터 등 다채롭게 조성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한 관람객들은 축제장 곳곳에서 조선왕실, 고고학 등 체험교육과 거리극 공연, 연날리기, 조선왕실 캐릭터 퍼포먼스, ‘청동금탁을 울려라’ 역사 퀴즈대회 등 양주의 우수한 역사‧문화적 의미를 더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즐기며 화창한 봄을 만끽했다.
축제장 메인 무대에서는 양주별산대놀이, 양주소놀이굿, 양주농악, 양주상여와회다지소리, 양주들노래 공연과 함께 몽혼아트컴퍼니의 궁중무용, 청련사 범음패보존회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문화유산인 ‘영산재’ 공연, 한국불교태고종 청련사 심향합창단 공연 등이 흥겨운 축제 분위기를 이끌었다.
잔디광장에서는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줄타기와 풍물 등 남사당놀이 공연과 함께 댄스플래시몹, 조선마술사, 왕실의 보물을 찾아라 등을 진행, 관람객들에게 즐거운 봄날의 소중한 추억을 선사했다.
이날 왕실축제의 폐막 공연에는 ‘나눔을 축제하라’를 슬로건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국제구호개발 NGO 굿피플’과 함께하는 착한콘서트가 재즈피아니스트 지나의 사회로 펼쳐졌다.
착한콘서트는 △타악그룹 ‘런’의 독창적이고 흥겨운 대북공연을 시작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의 폐막식 무대를 뜨겁게 달궜던 퓨전국악밴드 ‘잠바니아’, △아름다운 하모니의 4인조 남성 팝페라 이이돌 ‘파라다이스’, △2000여회의 버스킹 공연을 통해 실력을 입증한 싱어송라이터 ‘라이브유빈’, △국악의 세계화를 꿈꾸는 퓨전국악밴드 ‘WHOOL(훌)의 공연이 이어졌다.
특히, △‘미친 성대’, ‘미친 가창력’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대세 밴드로 떠오른 ‘몽니’와 △파워풀한 허스키 보이스,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대한민국 대표 여성 락커 ‘서문탁’의 공연이 펼쳐지며 축제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시 관계자는 “화창한 봄날, 유서깊은 문화의 도시 양주에서 펼쳐진 이번 회암사지 왕실축제가 수만은 인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안전하게 마무리되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경기북부 최고의 관광명소이자 역사체험의 장에서 개최하는 왕실축제가 앞으로도 역사적 의미와 함께 더욱 멋진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가득한 명품 축제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고려 말 조선 초 최대의 왕실사찰이었던 조선 왕실 불교의 성지, 양주 회암사지는 지난 1997년 발굴조사를 시작해 2016년, 20여년에 걸친 종합정비사업을 완료하고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회암사는 인도 마갈국(마가다국)에서 태어나 원나라에서 고승으로 이름을 날리던 지공선사가 고려에 찾아와 “산수가 천축국 나란타사와 같아 불법을 펼치면 흥할 것”이라며 이곳에 회암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태조 이성계의 각별한 관심으로 스승이었던 무학대사를 회암사 주지로 머무르게 하는 것은 물론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주고 난 뒤 회암사에서 수도생활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안타깝게도 16세기 후반 원인모를 화재로 인해 원래의 절은 불타 없어지고 터만 남았지만 1만여평에 달하는 유적에서는 궁궐과 유사한 건축양식이 확인되고 조선 왕실의 품격있는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왕실도자기와 궁궐에서나 사용하던 장식기와 등 10만 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 회암사지의 위상을 보여준다.
특히, 최근 14세기 불교사상의 교류와 고려시대 궁궐 건축과의 유사성, 온돌, 배수체계 등 당대 최고의 건축기술이 집약된 유적으로 그 가치가 입증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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