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심하다 허찔린 홍영표
현재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벌어진 여야 강대강 대치 국면에서 가장 답답한 사람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주 공수처 설치 법안의 절충안을 받아들이며 여야 4당의 합의에 거의 도달했다. 하지만 바른미래당의 내홍과 제1야당인 한국당의 극렬한 저지라는 막판 변수에 급제동이 걸렸다.
패스트트랙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바른미래당의 협조가 절실하지만 막판 오신환‧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의 사‧보임 강행이 악수로 작용했다. 결국 바른미래당은 29일 독자적인 공수처 법안 발의, 이를 다른 안건과 패스트트랙에 지정해줄 것을 제안했다. 또다른 야당인 민주평화당은 바른미래당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여야4당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며 당초 민주당의 구상과 멀어지고 있다.
홍 원내대표도 기자회견을 통해 사태가 상상 이상이라고 당혹스러운 감정을 밝혔다. 민주당이 바른미래당 내홍과 한국당의 반대를 너무 안이하게 예상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만약 패스트트랙이 좌초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정치개혁·사법개혁 과제도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되고, 홍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 무조건 막고보는 나경원
한국당은 물리력이든 여론전이든 무조건 개혁법안의 패스트트랙을 막고 보자는 분위기다. 실력 행사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제1야당의 입지를 다지겠다는 포석이다.
동물국회와 폭력국회의 오명을 받으면서도 나경원 원내대표와 지도부는 물리적 충돌을 유발시켜 지지층 결집에 오히려 이용하는 모양새다. 장외투쟁까지 나선 것도 시너지 효과를 확산시키겠다는 전략에서다.
실제로 한국당 지지율도 계속 오르고 있다. 지난 23~25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4%포인트 오른 24%로 집계됐다.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을 통해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
그러나 여야4당의 선거제개편·공수처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오를 경우 무조건 반대만 할 수는 없다. 29일 현재 한국당 해체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30만명을 돌파하는 등 국민 여론이 한국당에 부정적으로 흐르는 것도 큰 부담이다. 상임위를 거쳐 본회의 표결까지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한국당이 또다른 지연 전략을 고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캐스팅보트 쥔 김관영 오락가락 행보
캐스팅보트를 쥔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행보는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야 4당은 속을 썩이고 있다.
초반에는 김 원내대표가 당의 내분을 수습하며 아슬아슬하게 여야 4당의 개혁법안 잠정합의에 동의를 이끌어 냈다. 패스트트랙 추진도 가시권에 들어온 것으로 판단됐다. 하지만 오신환 의원이 변수로 작용했다.
사개특위 전체회의를 앞두고 오 의원이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소신발언을 했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사‧보임이라는 강수를 뒀고, 이 결정은 악수로 작용했다. 자유한국당에 농성 명분을 줬고 내부의 분열도 더 커졌다. 또다른 사개특위 위원인 권은희 의원까지 사‧보임을 강행하면서 지도부 책임론도 더 커졌다.
29일 김 원내대표는 권 의원의 의견을 존중해 독자적인 공수처 설치법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사실상 여야 4당이 함께하는 패스트트랙 지정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명분과 실리를 두고 우왕좌왕하다 김 원내대표가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평가다. 만약 패스트트랙이 좌초하게 되면 김 원내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된다.
민주당이 바른미래당의 공수처 내 기소심의위원회 설치는 받아들이되 패스트트랙 지정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대신 민주당은 기존 공수처 법안을 유지하되 사개특위 논의 과정에서 바른미래당의 요구를 반영해 수정 의결하기로 하고 원내대표 간에 합의문을 작성하는 1안과 기존 법안과 바른미래당 법안을 합해 새로운 법안을 상정하는 2안을 제안했다. 바른미래당에 다시 공이 넘어갔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