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포스코·한화도 기웃대는 하이난…'제2의 홍콩' 꿈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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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커우·싼야(중국)=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9-05-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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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무역항 지정 1주년, 30년 만의 재도전

  • 남중국해 거점 육성, 제조기반 취약 한계

  • 韓기업 진출 타진, 테스트베드 활용 가능

중국 하이난성 남부 싼야시의 국제 크루즈항 펑황다오(鳳凰島) 전경. [사진=이재호 기자 ]


'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중국 최남단의 하이난성.

대만과 비슷한 면적의 섬으로 아름다운 해변과 수려한 자연 경관을 자랑하지만 관광 산업을 제외한 경제 기반은 상당히 취약하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4832억 위안(약 83조원)으로 중국 내 31개 성(省)급 지방정부 중 27위에 그쳤다.

하이난의 가치가 재조명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중국 최초의 자유무역항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1988년 경제특구로 지정된 뒤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하이난은 30년 만에 '제2의 홍콩'이 되기 위한 재도전에 나섰다.

포스코와 한화 등 국내 대기업이 현지 진출을 타진할 정도로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제조업·인프라가 취약하고 우수 인재가 부족해 홍콩 수준의 국제 무역항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도 공존한다.

자유무역항 선포 1주년을 맞은 하이난의 주요 도시를 돌며 발전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타진해 봤다.
 

[그래픽=이재호 기자]


◆中·동남아 잇는 해상 실크로드 거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4월 13일 하이난을 중국 내 12번째 자유무역시험구(Pilot Free Trade Zone)로 지정했다. 더 나아가 섬 전체를 중국 최초의 자유무역항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유력한 후보였던 상하이를 제친 결과라 화제가 된 바 있다.

자유무역시험구는 개방 확대를 통해 중국 내 비즈니스 환경을 국제적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제도다. 2013년 상하이를 시작으로 11곳이 순차적으로 지정됐으며, 무관세 등 세제 혜택 제공과 금융·서비스 시장 추가 개방 등이 골자다.

자유무역항은 자유무역시험구보다 지역적 규모가 크고 개방도가 더 높은 게 핵심인데, 구체적인 정책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하이난이 갖춘 지리적 이점에 주목했다.

천강(陳剛)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원은 "사면이 바다인 하이난은 지리적 입지가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유사하다"며 "서태평양·중국·유럽을 잇는 루트 혹은 동북아·동남아 연결 노선의 허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천 연구원은 "자유무역항으로 지정되면서 중개·가공 무역에 유리해졌다"며 "특히 동북아와 동남아가 하나로 묶이는 동아시아 경제체가 형성되는 추세라 하이난의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국내 대기업들도 하이난의 자유무역항 지정으로 파생될 다양한 효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이난 상무청 관계자는 "최근 포스코와 현대상선, 한화 등의 한국 기업이 찾아와 투자 상담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포스코는 중국 남부와 동남아의 철강 수요에 동시 대응할 수 있는 물류·가공센터 설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목적으로 광시좡족자치구의 팡청강(防城港) 제철소에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동남아 경제가 발전할수록 철강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베트남이 독자적으로 자동차 생산에 나설 계획이라 자동차 강판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갖춘 포스코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유일의 국적 해운사인 현대상선도 하이난이 남중국해 물류 중심지가 될 가능성에 대비해 거점 확보를 추진할 수 있다. 한화의 경우 한화손해보험 등 금융 계열사의 보험업 진출을 염두에 두고 시장 조사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난이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어떤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지 확인한 수준이다.

◆中정부 '스페셜리스트' 투입, 전폭 지원

하이난 자유무역항 건설을 진두지휘 중인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의지가 읽힌다.

지난 2017년 5월 하이난성 성장으로 임명된 선샤오밍(沈曉明) 성장은 의사 출신의 관료로, 상하이 제2의과대학 총장과 부속병원 원장을 거쳐 2008년 상하이시 부시장을 맡으며 푸동 경제신구 건설을 주도했다.

2015년부터 푸동 경제신구의 확장판인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 관리위원회 주임도 역임하는 등 자유무역 관련 행정의 전문가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하이난 남부 중심지 싼야(三亞)시의 당서기가 된 퉁다오츠(童道馳)는 국제·금융 분야 전문가다. 199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 연구원을 지냈고, 귀국한 뒤 증권감독관리위원회 국제협력부 주임과 상무부 부장조리 등을 거쳤다. 2015년 후베이성 부성장으로 부임해 자유무역시험구 건설을 이끌었다.

대외개방 정책에 일가견이 있는 수뇌부 진용은 가시적인 성과도 내고 있다.

지난해 하이난에 신설된 외자기업은 167개로 전년보다 92%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만 82개가 더 생겼는데, 이는 전년 동기의 4.5배에 달한다. 지난해 실제 투자된 외자 규모는 7억3300만 달러로 112% 늘었고, 올해 1분기에는 6761만 달러로 51배 급증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하이난을 중국 최초의 블록체인 실험 특구 및 선행구로 비준하는 등 정보기술(IT) 산업 육성책을 도입했다. 그 결과 지난해 하이난에 신설된 IT·첨단기술 기업은 381개로 46% 증가했다. 관련 산업생산은 1000억 위안(약 17조2100억원)으로 집계됐다.

룽옌쑹(榮延松) 하이난성 상무청 부청장은 "서비스·첨단기술·관광 등 분야의 외자 유치에 주력하며 외상투자법 출범을 계기로 외자기업 권익 보호도 강화할 것"이라며 "JK성형외과가 보아오 국제의료관광단지에 진출하는 등 한국 자본 유치 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하이난성에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 면세점 CDF몰의 외부 전경(위)과 내부 매장 모습.[사진=이재호 기자 ]


◆제조기반 취약, 인재유치 난항

하이난 남부의 휴양 도시 싼야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면세점 CDF몰이 있다. 지난 26일 찾은 CDF몰은 평일 낮인데도 고객들로 북적였다.

명품 시계 매장 점원에게 물으니 "평일·주말 가릴 것 없이 휴양객이 많은 지역이라 면세점을 방문하는 고객 규모도 계절별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이난의 전체 관광수입은 951억 위안(약 16조3700억원), 면세품 판매액은 101억 위안(약 1조7400억원) 수준이다. 59개국과 무비자 협정 체결, 157개 호텔 브랜드 유치 등 현지 정부가 강조하는 구호에서 하이난의 취약한 제조업 기반을 확인할 수 있다.

홍콩은 선전이라는 제조 기지를 등에 업고 국제 무역항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인구 926만명의 하이난은 시장이 작아 대기업 유치에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하이난항공그룹(HNA)을 제외하면 내세울 만한 로컬 기업도 없다. 자유무역항 프로젝트가 시작된 후 하이난의 경제 관료들 사이에서 "우리가 제공하는 토지와 인프라로 외지 대기업만 배를 불리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우수 인재 유치에도 주력하고 있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하이난 최대 도시인 하이커우(海口)시의 경우 이공계 인력의 경우 월 5000위안의 집세를 지원하고 주택 구입을 원하면 연 6만 위안의 보조금을 제공한다.

한 소식통은 "개혁·개방의 성지로 불리며 지난 40년간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룬 선전도 역내에 명문 대학이 없어 인재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우수 인재를 키우기 위한 환경이 하루아침에 조성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홍콩 등 경쟁 지역에 비해 저렴한 비용은 최대 강점이다.

황재원 코트라 광저우무역관 관장은 "비용 부담이 큰 홍콩이나 규제 장벽이 높은 중국 내륙 대신 하이난에 법인을 설립해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며 "자유무역항의 개방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높일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황 관장은 "매년 하이난을 찾는 2700만명의 관광객은 구매력을 갖춘 소비 계층"이라며 "의료·화장품·소비재 분야의 한국 기업이라면 내륙 진출 전에 하이난을 테스트 베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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