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는 출장중, 문대통령은 항일투쟁중... '외교비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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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니엘 아시아리스크모니터(주) 대표이사
입력 2019-05-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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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니엘]






일본 컴백, 한국 패싱

한일관계가 나빠지고 있다. 하나의 심리적 동인은 경쟁의식이다. 유사한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과 일본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며, 한 쪽의 이득이 다른 쪽의 손해라는 생각이 정착되고 있는 듯하다. 이 제로섬적인 인식은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에 의하여 더 증폭되고 있다. 문제는 두 민주국가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로도 바뀌고 있다. 일본은 소위 ‘잃어버린 30년’의 터널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안으로는 경제의 동력이 약해지고, 밖으로는 미국, 중국, 북한이라는 세 '상전'의 눈치를 보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은 부활하는가?

전후의 세계사에서 일본의 정점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의 지위를 누렸던 1980년대이다. 일본의 상품이 전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일본식 경제발전’이 영미식 경제발전의 대안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기적’은 버블붕괴와 함께 인류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그런 일본이 최근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달에 두번 출장을 가서 보는 일본의 모습이 밝아지고, 기업가들의 언행이 점차 자신감에 차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일단 부활이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그 현상은 미시적인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것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일본경제는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IMF가 발표하는 GDP 성장률을 보면, 경기가 정점이었던 1988년에 6.8% 최고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그 사이에 마이너스 성장도 있었고,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2012년 이후의 기간을 보더라도, 평균성장률 1.2%이다.

“차원이 다른 금융완화”를 주창하며,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국채를 사들이고 심지어 투기형펀드 투자까지 시키며 시장에 돈을 풀어도, ‘디플레이션 탈출’은 좀처럼 실현되지 않고 있다. 결국 ‘물가는 역사적 현상’임을 확인하며, 아베정권의 경제정책은 머쓱하게 들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무슨 부활인가? 담론의 장은 국제관계이다. 아베 신조와의 인터뷰에서 필자가 느꼈던 것은, 그의 ‘정치적 로망’이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라는 것이다. 일본 보수정치의 원형으로 불리는 기시와 관련하여 유명한 일의 하나는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항공기 외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베는 이 분야에서 외할아버지를 능가하는데 성공하였다. 일본 외무성의 자료를 보면 아베총리는 2012년 이후 6년간의 기간에 총 72회의 외국방문을 실시하였다.

다른 총리들이 임기에 10회 미만의 외유를 행하는데, 아베는 한달에 한번 꼴로 외국을 방문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외유의 가장 인기있는 목적지는 미국이다. 일본의 국제정치를 설명하는 데에는 ‘즈이베 외교’라는 어휘가 등장한다. 한자로 随米外交다. 여기서 随는 따라간다는 뜻이고 米는 미국이다. 즉, 일본의 외교는 미국과의 합의를 실천하는 외교이다.

따라서 아베외교가 미국외교의 복사판인 것은 당연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새로운 변화가 있다. 하나는 독자적인 영역의 확보이다. 이것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이 ‘경제외교’이다. 자원조달을 외부에 의존하고, 무역으로 생존하는 일본이 경제외교에 치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한 점에서, 아베정권이 공을 들이고 있는 ‘메가FTA’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트럼프 정권이 전례없는 형태로 세계무역 레짐(regime)에 변화를 가져오는 상황 속에서, 아베 정권은 무역협정분야에서 나름 주도권을 쥐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TPP11과 EU-일본 CPA이다. 원래 미국을 포함하여 12국이 참여하기로 되어 있던 환태평양파트너쉽이라는 메가FTA에서 미국이 빠지고, 일본이 주도하는 형태로 발족하게 된 TPP11 (또는 CPTPP)는 세계교역량의 15% 정도를 차지하는 ‘포괄적이고 점진적인’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협정을 표방하고 있다. 나아가서, 2019년 2월에 발효한 ‘EU-Japan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EPA)’는 28개 유럽연합 가맹국과 일본이 맺은 최대규모의 자유무역협정이다. 이 29개 가입국은 전 세계 GDP의 3분의 1, 전 세계 교역량의 40%를 차지한다.

다시 중국을 챙기는 일본

아베외교의 또 다른 돌파구가 중일관계이다. 중일관계는 한일관계 못지 않게 역사적인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과 한국은 종류가 다른 나라이다. 과거 일본군이 중국을 지배하는 치욕을 안겼으나, 1972년의 중일국교정상화로 중국이 세계정치에 합류하는 데 분기점을 마련해 주었다. 그 후로 중국에 투입된 3조엔이 넘는 일본의 ODA자금을 감사하는 중국인이 적지 않다. 그 반면에, 북한을 ‘동북4성’의 일부로 간주할 정도로, 중국인의 한반도를 대하는 태도는 안하무인에 가깝다.

이러한 중국이 세계의 패권국가로 발돋음하며 미국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실속외교로 국운을 유지해 온 일본은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일관계가 어려운 때, 유창한 일본어로 인맥을 만들고, 두 나라를 잇는 다리로서 활약하셨습니다. 나도 집사람도 팬입니다.” 지난 5월 7일 저녁, 9년을 재임하고 떠나는 주일중국대사 정영화 환송리셉션에서 총리 아베가 직접 나와 손을 잡고 한 말이다.

그 반면에 4월 8일 한국대사 이수훈이 떠날 때, 일본의 정관계 인사들이 모인 리셉션 같은 것은 없었다. 한국외교의 현주소를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는 장면이다. 한국외교를 폄훼하고 일본외교를 예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고 나아가서 취약한 환경을 가진 일본과 한국에 있어, 외교의 모습과 기능이 너무 다름을 환기하는 것이다.

일본의 외교는 직업외교관들이 나름대로의 방법론과 전통을 가지고 정권의 방침을 실행해가는 기능외교이다. 그 반면에 한국의 외교는 ‘이념외교’로 변모하였다. 직업외교관들의 기능성이나 중립성보다, 정권의 이념을 외교에 반영하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외교적 정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대사의 임명이다.

아래의 표에 나와 있듯이, 일본의 미국, 중국, 한국 대사는 모두 국가고시를 통과한 직업외교관으로서 주요국의 대사나 외무심의관을 역임한 사람들이다. 그 반면에 한국의 미국과 중국 대사는 경제분야의 전문가 출신이고 주일대사는 직업외교관 출신이다. 이 세 사람을 관통하는 유일한 공통점은 대통령 곁에서 일했다는 것이다. 외교방침이 아니라 이념 ‘코드’가 맞는 것이다.

 

 


한국의 외교를 이념외교라고 부른다면, 이를 압축하는 개념이 ‘투트랙’이 아닐까한다. 일본에 관한 대응책에 관하여 일본전문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처방전이다. 즉, 역사문제와 현실외교를 분리한다는 것이다. 거칠게 표현한다면, ‘너희 조상이 잘못했으니 따귀를 때릴게 (트랙 1), 그래도 상호의존의 세계에 살고 있으니 필요하면 서로 돕자 (트랙 2)’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한국에 친근감을 가지는 일본인들마저 거부감을 보인다. 그들에게는 한국인의 자기중심적 기회주의라로 인식되고 있다. 한때 일본이 세계에서 ‘패싱’당하다고 평가되었다. 그 ‘패싱’이 이제 내부지향성을 추구하는 한국에 적용되는 것은 아닌가?




노다니엘
아시아리스크모니터(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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