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훈 전 대법관(74) 앞에 붙는 수식어다.
대법관 시절 그는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확대하는 판결들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법관 임기 이후에도 그의 영향력은 줄지 않았다. 화우공익재단 이사장, 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서울대학교 이사장, 사법발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여전히 ‘공공의 선’을 위해 뛰었다.
이 전 대법관을 삼성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화우 사무실에서 만났다. 몇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다가, 차 한 잔 나누며 후배들에게 덕담이나 해달라고 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하지만 사법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표정과 말투는 덕담 수준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인터뷰로 이어졌고, 노트북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사법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사법개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소회가 어떠신가.
“지난 연말 9개월에 걸친 활동 끝에 사법발전위원회 활동을 끝냈다. 사법부가 어려운 시기라서 힘들더라도 사법개혁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법원에서도 사법발전위 권고를 대부분 수용하겠다고 해서 맡았다. 앞으로 국회에서 입법 조치를 거쳐야 하는 사안들이 많다. 예를 들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는 법원조직법이 개정돼야 가능하다. 국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을 친 상태다.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가 절대적인 조직이다.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한다. 사법부 독립이 제대로 안 돼서 현실적인 문제들이 발생했다고 본다. 사법부 수장 구속은 상당히 엄중한 사태다. 대통령 2명이 구속된 것으로, 국가적으로 매우 심각한 일이다.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정적인 개혁을 통해 재판다운 재판을 하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사법개혁은 국민의 입장에서 시작하면 된다. 법원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국가의 근본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게 국민 입장에서는 기본권의 실현이다. 기본권은 국가에 의해 침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걸 법원이 보호해줘야 하는데 제대로 못한 것이다.”
-얼마 전 논란이 됐던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지연 사건’이 딱 그런 것 같다. 언론이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지적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수긍할 만한 내용이 많다. 내가 재판을 하는 건 아니라서 재판기록 없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언론에서 지적하는 사항들이 경청할 게 많다. 사법부는 언론, 국민의 비판을 항상 경청해야 한다.”
-사법부가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인가.
“우리가 개발도상국이다 보니 국가체제를 보호하고 개발을 하자는 입장에서 국가주의적 입장이 우세했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며 발전한 역사였다. 사법부가 국가운영에 협조를 해준 셈이다. 강제수용, 긴급조치만 봐도 그렇다. 국가 개발을 위한 공익 목적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된 것이다.”
-사법부가 상당한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보면 될까.
“분단 상황에서의 국가 개발과정에서 사법부가 국가안전보장, 국가체제보호, 국가 경제발전 논리에 무게를 뒀다면,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공정한 시각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면서 양심에 맞게 정의로운 판결을 해야 한다. 선진국으로 가는 대한민국의 신뢰를 높이고 국가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공정한 재판이 중요하다. 사법부 구성원들이 상당한 각오를 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환골탈퇴하지 않을까 싶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심정인가.
“대법원장 구속은 세계사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다. 내가 법원에서 정년까지 있었던 터라 참담한 마음이다. 이런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해결책이 없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본다. 참담하다. 상고법원 추진과정에서 무리했던 게 아닌가 싶다.”
-상고법원 도입이 실패하긴 했지만 대법원 사건 적체는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다. 대법원 상황은 어떤가.
“대법원에서도 20년 넘게 연구한 부분이다. 역대 대법원장마다 상고허가제, 상고심사제 등 다양한 제도를 추진했다. 반대의견이 많아 중단된 제도가 많다. 현재 시행 중인 심리불속행 제도에 대한 불만도 많다. 대법관 1명이 한 달에 300건 정도 처리한다. 그 이상 판단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떤 제도를 추진한다고 해도 결국 입법사안 아닌가.
“그렇다. 일각에선 대법관 수를 늘리자는 주장도 있다. 50명으로 늘려도 적체 문제를 해소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국가 예산도 뒷받침돼야 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사실 이 문제는 국회가 특별한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다.”
-변호사를 하면서 어떤 분야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가.
“주로 공익활동을 많이 했다. 화우공익재단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활동을 했다. 화우공익재단 이사장을 5년 정도하다 자리를 넘겼다. 이제는 재단 활동이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전담 인력은 2명 정도지만 법무법인 화우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진행했다. 성남시 외국인 근로자 상담을 비롯해 홈리스 소송도 했다.”
-공익활동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특별한 계기보다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 중에서 공익활동을 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공익활동을 하면 공익 문제를 많이 환기시킬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지금은 다른 로펌들도 공익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평화공동체 법제포럼이 뭔가. 간단히 소개 좀 부탁드린다.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아서 만든 포럼이다. 남북한 법제 교류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 정착과 공동체 통합에 기여하자는 뜻에서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법제는 거의 선진국 수준이다. 북한이 법치주의로 가는 작업을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 중국은 일본에서 배운다는데, 자존심 문제도 있으니까 북한은 남한에서 배우는 게 좋을 것 같다.”
-시골에 내려가시면 책을 한 권 쓰시는 건 어떤가. 많은 법조인들이 관심을 가질 것 같다.
“법제연구원에 다니는 딸이 있다. 요즘도 딸이 2주에 한 번씩 내려와 나와 대담을 나눈다. 대담식으로 기억나는 사건 중심으로 법치주의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는다. 나는 유신 때 법관이 됐다. 당시 법치주의는 참담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이 부분도 정리를 좀 하고 싶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