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은행에선 몇 분 만에 카드 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카드 한 장에 적은 액수를 이체해 놓고 들고 다니면 인적이 드문 밤이나 새벽시간에 돌아다녀도 분실, 도난 등에 대한 걱정이 적어요."-런던 이슬링턴 지역 대형마트에서 야간 근무하는 현지인 오스만 무커빔 씨(26)
핀테크산업 선두주자인 영국 런던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얘기들이다. 수수료 없이 다른 나라 통화로 환전이 가능하고, 길게는 몇 주씩 걸리는 시중은행 계좌발급 절차 대신, 간단한 신원확인 후 몇 분 만에 발급이 이뤄지는 인터넷은행 덕분에 런던에선 핀테크산업 발전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휴대폰만 있으면 계좌 개설 '뚝딱'
영국무역투자청(UKTI)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핀테크산업은 연간 200억 파운드(약 30조원) 규모다. 각종 세제 혜택, 최고 수준의 금융 인프라,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모이는 최고의 인재들. 런던은 핀테크산업이 성장하기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고루 갖췄다.
브렉시트 불확실성으로 유럽 금융사들이 타지역으로 거점을 옮기자, 그 빈 자리를 핀테크 회사들이 재빠르게 채우고 있다. '글로벌 핀테크 허브 2018' 보고서에 따르면 런던에서 5000만 달러(약 596억원)가 넘는 벤처캐피털을 조달한 핀테크 회사 수는 모두 32곳이나 된다. 전 세계에서 중국 베이징(58개), 미국 샌프란시스코(56개)와 뉴욕(48개) 다음으로 많다.
영국 정부도 이런 추세를 재빨리 간파하고 관련 기업 유치를 위한 홍보에 힘을 쓰고 있다. 특히 런던금융특구 '시티오브런던'의 피터 에스틀린 명예시장은 지난 13일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브렉시트 전까지 별도의 한·영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준비가 완료되도록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영국이 런던 금융허브를 중심으로 브렉시트 이후 주요국과의 FTA 체결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 시티오브런던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금융회사는 약 30여곳이다.
◆고집스러운 런던...이면엔 변화무쌍한 핀테크산업
보수적이며 관료주의적이고, 융통성 없이 원칙만 추구하는 조직. 세계 금융 허브라는 런던의 은행들에 대한 첫 인상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지점 방문하면 하루 만에 뚝딱 끝날 일인데." 답답한 마음에 때론 분을 삭여야 했다.
영국에서 일반 은행 계좌를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지점을 방문해야 한다. 담당자와 미팅 일정을 잡는 것조차 어렵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의 지점을 이용할 경우 길게는 2~3주가 걸리기도 한다. 그 다음에는 인적정보 등 수많은 정보를 꼼꼼하게 기재해야 하는데, 주소지의 경우 본인이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하지 않거나 방 호수까지 명확하게 기재하지 않으면 담당자의 재량으로 계좌 개설을 보류시킬 수 있다.
주소지 확인 절차부터 외국인이라면 영국에 왜 거주하게 됐는지 등을 공식적으로 보증하는 문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제는 흔해진 '몬조(Monzo)' 같은 인터넷은행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영국에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전혀 다른 런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서 새삼 놀라웠다. 런던 금융가는 겉으로는 고집스러워 보이지만, 변화무쌍한 핀테크산업에는 더 없이 유연한 모습이다.
최근 영국에 진출한 실리콘밸리 핀테크업체 플레이드의 공동 설립자인 자크 페렛은 한 인터뷰에서 "영국 핀테크산업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붐을 이루고 있다"며 "영국은 우리가 항상 진출하고 싶었던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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