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아트센터가 올해 두산인문극장 대미를 장식하는 무대로 선택한 ‘포스트 아파트’(POST APT)가 6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2013년부터 ‘빅 히스토리:빅뱅에서 빅데이터까지’, ‘불신시대’, ‘예외’, ‘모험’, ‘갈등’, ‘이타주의’를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 ‘두산인문극장’은 2019년 ‘아파트’를 선택했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두산인문극장’은 아파트를 주제로 강연 8회, 공연 3편, 전시 1편을 선보였다.
마지막 공연인 ‘포스트 아파트’는 예술가들이 함께 만든 실험적인 작품이다. 정영두 두 댄스 씨어터 대표가 안무와 연출을,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가 공간과 건축을 맡았다. 사운드는 카입(Kayip), 영상은 백종관이 담당했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포스트 아파트’ 관리소장이 보낸 입주자 대상 안내문을 받는다. 정해진 무대와 객석은 없다. 편한 곳에 앉으면 된다.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는 극장 앞마당, 로비, 극장 앞에서 사전 퍼포먼스도 진행한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안대를 착용했다. 이어 들리는 공사장의 날카로운 소음이 잠들어있던 감각을 깨웠다. 흔들리는 바닥 덕분에 콘크리트를 부수는 기계음이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보이지 않으니 귀는 더욱 밝아졌다.
공간은 다양한 오브제들로 가득 찼다. 자연의 물과 흙, 냄새도 벌레도 없는 가공된 풀, 샤워 부스, 발코니, 평상 등 다양하다. 카입은 6개의 오브제 위에 스피커와 조명 기능을 가진 장치를 설치했다. 관람객은 공간을 탐색하며 여러 가지 오브제가 만들어내는 일상의 목소리를 경험할 수 있다.
배우 공영선, 권재원, 김영옥, 김원, 박재영, 신윤지는 다양한 춤과 상황극으로 공간을 채운다. 이미 현실이 된 고독사를 대비한 보험을 파는 장면, 이웃들과 상투적인 인사를 끊임없이 주고받는 장면 등은 현실적이라 강렬했다. 좁은 평상에서 배우들이 떨어지려는 한 사람을 힘겹게 잡고 있는 장면에서는 ‘함께 살자’는 메시지가 느껴졌다.
작품은 오랜 기간 생각을 모은 결과물이다. 2018년 4월 30일 첫 회의를 가진 ‘포스트 아파트’ 제작진은 아파트와 관련된 영상, 단행본, 논문, 희곡 등에 대한 조사와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작품을 준비했다.
공연 중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일제 시대인 1930년대 지은 서울 충정아파트다. 1962년 지은 마포아파트는 단지형 아파트다. 단지 밖과 안을 보면 중산층 등이 부의 축적을 남과 공유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서구와 일본을 통해 들어온 아파트는 태생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발명되고 우리에게 제안해 준 것들이다”라며 “우리는 계속 진화해야 한다. 진화가 멈춘 지점인 평상과 베란다로 돌아가 다시 고민을 해보는 건 어떨까?”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포스트 아파트’는 미래의 아파트에 대한 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답을 말하는 건 불가능한 과제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더 나은 거주를 위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없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지난 3개월 동안 진행된 두산인문극장은 다양했다. 연극 ‘철가방추적작전’은 균일한 외관 속에서 살고 있지만 사회적, 경제적으로 다양한 차이를 담고 있는 아파트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뤘다. 중학교 교실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바탕으로 우리 안에 내재된 적대심과 차별에 대해 돌아보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물었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1992년 한국일보 창작문화상을 수상한 영화감독 이창동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아파트 건설 공사장 바닥에 질펀하게 깔려 있는 똥처럼 평온한 삶에 감춰져 있는 우리의 민낯을 현실적으로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 정헌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박해천 동양대 교수, 김민섭 저술가, 정재호 미술작가, 임형남과 노은주 건축가, 강재호 서울대 교수는 강의를 통해 아파트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공연을 본 후 아무 생각없이 스쳐 지나갔던 아파트가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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