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수억 동 뇌물혐의 부패공무원 구속
"부패 관행 뿌리뽑자" 여론 들끓어...베트남 최대 그룹도 비리스캔들
지난달 중순 빈푹성에서 수억 동 규모의 공무원 건설비리가 적발되면서 부패 척결 문제가 베트남 사회에서 재점화되고 있다. 이들은 감사 대상인 프로젝트의 일부 규제를 완화해준 것을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 현재까지 밝혀진 금액은 2억5000만동(약 1270만원)이지만, 정확한 액수는 아직 파악이 불가능한 상태다.
공안은 연루된 간부들이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건이 더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공안은 관련 공무원의 사무실에서 3억3500만동(약 1700만원) 상당의 현금과 관련 자료들을 압수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도로 및 교량 건설, 농촌 개발 등 건설 관련 프로젝트의 계획·허가·관리를 감시해야 할 건설부 감찰관들이 수억동의 뇌물을 받은 것이어서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베트남 네티즌들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고 비난하며 부패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할 감사 공무원들이 비리에 연루된 사실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앞서 지난달 9일 한국비자 사건에도 현지 베트남 공안들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한국 대사관은 3대 대도시(하노이, 호찌민, 다낭)에 거주하는 베트남 국민들을 상대로 최대 5년 동안 무비자로 한국방문이 가능한 복수비자를 발급했다. 하지만 비자 심사 과정에서 감독 업무를 맡은 공안들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한국 대사관은 비자발급 대상을 대도시 땀쭈(거주증) 보유자에서 호구부(호적)가 있는 시민으로 제한했다.
베트남 최대 그룹인 빈그룹도 친인척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에 휩싸였다. 베트남 공안은 팜느엇부 AVG(Audio Visual Global) 전 회장이 민간 유료 TV서비스 업체인 AVG를 베트남 국영 이동통신사 모비폰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에게 수백억동의 뇌물을 준 혐의를 포착하고 그를 전격 구속했다.
각종 부패 스캔들이 이어지면서 베트남 정·재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공산당 중앙부패방지운영위원회는 중앙과 각 지방의 당 조직 및 당국자들에게 반부패 조직 내부의 부정부패를 엄중하게 처리해 줄 것을 요청하는 급보를 보냈다. 위원회는 또 반부패 조직 사찰을 강화하고 부적절하거나 도덕적 흠결이 있는 인사들을 즉각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부패의 일상화’ 베트남의 가장 큰 고질적인 문제
"부패문제는 사업 방해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
사실 베트남의 부패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간 베트남 부패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으며 부패 척결은 매년 정부정책의 1순위 해결 과제로 상정되어 왔다.
문제는 베트남의 부패가 일상화한 지 오래라는 점이다. 굳이 상부구조의 권력층이 아니더라도 공항세관 뇌물, 교통법규위반 뇌물, 공문서 발행 시 급행료 지불 등 일상생활의 소소한 부패가 보편화 돼 있다. 심지어 교통공안들에게는 무면허 150만동, 음주운전 100만동, 신호위반 50만동을 줘야 한다는 구체적인 금액 리스트까지 나돌 정도다. 관공서가 아닌 은행이나 금융기관에서도 대출, 송금 등 소위 리스크(위험)가 존재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이른바 ‘언더페이’를 손쉽게 요구한다.
세계투명성기구에 따르면 180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베트남의 부패지수는 2017년 107위에서 지난해에는 117위로 추락했다.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는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적발해서 처벌하는 등 노력을 했는데도 국제 비교에서 순위가 더 추락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결과다.
그는 “처음에 한국인들은 이 같은 베트남 부패에 치를 떨지만 베트남에 오래 살다보면 본인도 이 같은 부패방식에 젖어들어 이를 오히려 역이용하게 돼 문제”라고 덧붙였다.
실제 한 기업연합회가 개최한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기업인들은 규정에 상관없이 매 분기 되풀이되는 새해(TET)비용, 소방안전비용, 각종 인허가 비용, 환경비용 등 관련 부조리를 토로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요즘 베트남 국민들의 관심이 온통 경제 발전에만 쏠려 있어 부패를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차피 다 잘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를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조금 더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면 어떠냐는 사회적 공감대도 있다는 것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베트남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말을 상기시키며 ”빠른 일 처리를 위해 뒷돈을 주고 위법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뇌물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사소한 부패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치부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베트남 정부, “발전을 통해 더욱 고차원적으로 부패에 맞설 것”
부패는 시간과의 써움...사회시스템 신뢰 확보도 ‘대안’
베트남에서는 지난 1일부터 새로 개정된 반부패 방지법이 시행됐다. 지난해 발효된 법안보다 적용범위와 처벌 내용이 한층 강화됐다.
새로운 부패방지법에는 행정기관 등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나 경찰관, 직업군인, 기업 내 정부관계자, 국영기업 관리직 등으로 법 적용 대상을 대폭 넓혔다.
또 뇌물 요구를 비롯해 국가 기밀정보 또는 업무상 비밀 등을 일반 개인·기업에 자문하는 행위, 인사청탁, 관할분야 기업 출자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해임, 강등, 임금삭감 등 부패에 연루된 공무원에게 내리는 징계조치와 더불어 최대 무기징역까지 내릴 수 있는 형사처벌 규정도 한층 강화됐다. 금품을 제공한 자도 역시 처벌된다.
베트남 정부는 매년 부패방지중앙지도위원회를 개최하고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응우옌푸쫑 공산당 서기장은 지난 1월 하노이에서 열린 제15회 부패방지중앙지도위원회에서 “베트남은 발전을 통해 더욱 고차원적으로 부패에 맞설 것”이라며 “올해 위원회는 사회 경제와 반부패 관련 부서 설치와 부패의 뿌리를 뽑는 예방 정책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베트남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정부의 청렴국가 비전이 성공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부패 문제가 도약하는 개발도상국가에서는 늘상 존재해온 일이기 때문에 베트남만이 특별히 달라지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교민은 “베트남이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당분간 부패 관행을 뿌리 뽑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상부에서(정부) 재촉해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가장 큰 문제는 급여 자체가 적은 것이다. 국민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중산층이 확대되면 점차 사라질 문제다.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평가했다.
베트남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호주의 매체인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최근 ‘베트남 부정부패의 그늘’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베트남 사회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똑같은 베트남인이라도 호주에서는 준법정신이 투철한 데 비해 베트남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베트남의 부패가 국민성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시스템 존재 여부의 문제라는 분석이다. 신문은 그러면서 '사회적자본'을 통한 신뢰사회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베트남 하노이의 한 교민은 “이미 부패방지법이라는 제도가 있음에도 사람들이 안 지키는 것은 현재 베트남 사회시스템에 대한 신뢰 척도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부패 문제들은 주로 지방 성에서 벌어진다”며 “이 같은 문제점을 중앙으로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신뢰사회를 구축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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