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이 계속되고 중국의 군사력이 나날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은 한미일 3각 동맹을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으로 여겨왔다. 과거에도 한일 갈등이 수위를 넘는다 싶으면 미국 정부가 어느 시점에 나서서 갈등을 중재해온 이유다.
그러나 일본의 일방적인 수출규제에 한일 관계가 통제불능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부재'가 유독 눈에 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3일(현지시간)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일본과 한국을 잇따라 방문했지만 한일 관계에 대한 발언은 없었다.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포드대학 국제정치학 교수는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양국에 싸워도 된다는 허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로 "(한일) 경제전쟁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며 "무척 위험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주요 외신들은 아베 총리가 한국을 겨냥해 기술수출을 무기로 삼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배운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쁜 선례'를 썼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 칼럼에서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이고 일방적인 외교방식을 따라하면서 "트럼프화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국제포경회의(IWC)를 탈퇴하고 고래 사냥을 재개한 점, 한국과의 역사갈등에 무역 제재조치로 대응한 점을 그 예로 들었다.
칼럼은 아베 총리가 트럼프화 된 데에는 '트럼프 시대'의 특징인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 붕괴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며, 이런 혼란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트럼프식 방식을 따르는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봤다.
현재로선 한일 양국 모두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수출규제 품목을 늘리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고, 우리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겠다고 경고했다.
오쿠무라 준 메이지국제관계연구소 애널리스트는 사우스모닝포스트(SCMP)에 한일 무역갈등 규모를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갈등에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한일 양국 모두 "상당한 불편을 겪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어쩌면 실제 고통이 우려한 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건 양국이 서로 치고받는 대치가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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