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북 롯데①] 롯데의 모호한 정체성, 한중일서 불매운동 불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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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기자
입력 2019-07-2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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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장 표명 불명확...시간이 毒(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사진=아주경제DB]

[데일리동방] 재계 5위 롯데가 한일 갈등으로 ‘동네북’이 됐다. 한중일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한국 또는 일본 회사로 인식돼 불매운동 목록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여론이 롯데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집안 내력과 불분명한 처신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롯데가(家)는 뿌리부터 국적 논란을 부른다. 식민지 시절 일본에서 기업을 일군 창업주가 한국에 진출해 재계 5위로 올라서고, 두 아들이 양국 롯데를 이끌다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은 1922년에 태어나 19살이던 1941년 일본에 건너갔다. 이후 제과 회사를 차려 껌 사업에 성공한 그는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세웠다. 한국 롯데의 시작이다.

신 명예회장과 두 아들의 출신 대학 소재지도 일본이다. 신 명예회장은 와세다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 회장 모두 아오야마가쿠인대에서 학부를 마쳤다.

여론이 삼부자의 국적에 관심을 둔 계기는 경영권 다툼이 시작된 2015년 형제의 난이다.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 주주들에 힘 입어 형을 해임하고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일본 롯데 장악에 나섰다. 아버지의 힘을 빌려 설욕에 나선 신동주 전 부회장의 존재는 이때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롯데가 형제의 한국어 실력이었다. 신동빈 회장은 어눌하지만 회화가 자연스러운 반면 장남은 한국어를 못해 통역이 필요했다. 당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언론에 아버지와 일본어로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가족끼리 일본어를 주고받는 일본인 가족이라는 이미지가 생겨났다. 상황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이끌려던 장남은 한국말 못하는 한국인으로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롯데는 그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신 명예회장과 신 회장 모두 한국 국적을 포기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일본 기업 이미지를 지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롯데가 삼부자의 이름이 일본어로 불리게 된 계기도 이때였다.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일본 이름은 시게미쓰 다케오, 장남 신동주는 시게미쓰 히로유키,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시게미쓰 아키오다. 롯데는 신 명예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의 외삼촌이 2차 대전 A급 전범으로 처벌 받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반박하며 진땀을 빼기도 했다. 부인의 성 시게미쓰는 신 명예회장을 따랐고 원래 성은 다케모리라는 해명이지만, 외삼촌과 성이 다른 점은 당연하기 때문에 근거가 약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잊을만 하면 반복되는 병역 회피 논란도 부담이다. 20대에 일본과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간 신동빈 회장은 1990년대 호남석유화학 이사로 한국에서 경영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병역 의무가 없어진 1996년 41살의 나이로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 역시 병역을 마치지 않았다. 신 회장의 아들도 병역을 마치지 않을 경우 향후 3세 승계 과정에서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과 일본이 한국과 갈등을 겪을 때마다 롯데를 적대시 하고, 한국인 소비자 역시 롯데를 일본 기업으로 인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7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이다. 당시 롯데는 경북 성주 사드 부지 제공을 이유로 중국 정부로부터 영업 정지와 한국관광 중지에 따른 면세점 매출 하락을 겪어야 했다. 롯데는 결국 중국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이번엔 일본의 무역 보복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롯데가 일본 회사와 합작해 국내에서 운영하는 유니클로와 무인양품은 불매 운동 목록에 이름이 올랐다. 일본 역시 2014년 만들어진 한국산 제품 불매 목록이 다시 공유되고 있어 난감한 상황이다.

신동빈 회장은 정체성 발언을 피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일 사장단 회의를 마치면서 롯데가 ‘좋은 일 하는 기업’이라는 공감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정체성이 뒤섞인 롯데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으로 풀이된다. 신 회장은 앞서 2015년 롯데 매출의 95%가 한국에서 나온다며 한국기업임을 강조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체성 관련 입장 표명 요구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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