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일반이사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지난 26일 WTO 회원국의 비공식 지지 의사를 받았다고 언급한 뒤 "한국이 편한 날짜에 WTO 제소에 나설 것"이라며 "열심히 칼을 갈고 있다"고 말했다.
WTO 첫 제소 절차는 '양자협의 요청서(request for consultation)'를 상대국인 일본에 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부는 제소장 역할을 하는 양자협의 요청서가 제소범위와 성격을 한번 규정하면 수정하기가 쉽지 않는 만큼 총력을 다해 양자협의 요청서 작성에 나설 계획이다.
이 자리에서 여 실장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국제무역규범을 훼손하고 역내 무역자유화를 저해하고 글로벌 가치사슬과 RCEP 역내에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수출규제를 즉시 철회하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 국가 명단)에서 유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아울러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일본의 책임 있는 고위급 관리가 조속히 조치 철회를 위해 한국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외교적 갈등이 통상으로 번진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외교적 교섭을 통해 푸는 게 순리"면서 "그러나 외교적 해결이 정 안 될 경우 어쩔 수 없이 WTO 제소로 가야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제소해 일본이 다시는 이런 식의 수출규제를 할 수 없도록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제 통상문제와 관련해 가장 큰 다자무대인 WTO와 한일 간에 가장 중요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제통상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정부의 설득전도 한 단계 마무리된 상태다.
산업부는 국제여론전에서 일본의 수출규제가 자유무역에 관한 WTO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과 미중 무역문쟁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경제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나름 부각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산업부는 1일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등 3대 품목에 관한 수출규제 조치 발표후 직접적 맞대응보다는 국제 자유무역의 가장 큰 수혜국중 하나인 일본의 이율배반적 행태를 부각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일본이 자국 조치가 안보 차원에서 이뤄진 수출관리라고 강변했지만, 국제사회의 눈에 한국의 대화 제의에도 응하지 않는 일본의 옹색한 입장을 확연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마침 유명희 본부장의 방미에 즈음해 미국 IT 관련 6개 단체들이 일본의 수출규제에 우려하면서 한일 정부에 조속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가 가시화함에 따라 국내 기업 대상 설명회를 갖는 등 내부에서 실무적 대비에도 나서기로 했다.
산업부는 내달 2일 일본의 각의 결정에 대비해 29일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20개 업종을 상대로 수출규제에 대한 업계 설명회를 갖고 지역 순회 설명회도 차례로 개최할 예정이다.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면 우선 일본 수출기업이 일본 정부의 허가를 얻기 위한 서류를 내야 하는데, 한국 측 수입기업에도 최종 사용자와 용도에 대한 자료를 요구할 수 있으므로 수입 신청서류를 신경 써 작성해야 한다.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더라도 일본 경제산업성이 포괄허가 혜택을 주는 자율준수프로그램 인정기업(CP)을 거래대상으로 활용하면 상대적으로 수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알려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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