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은 20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와 10대 그룹 비공개 조찬에 다리를 놓으면서 민간 외교 역량을 보여줬다. 이 자리에는 2017년 전경련을 탈퇴한 삼성・현대자동차・SK・LG 등 4대 그룹도 포함됐다. 전경련이 30년 넘게 한미재계회의를 이끌면서 양국 재계 관계를 돈독히 해온 영향이라는 평가다. 1988년 시작된 한미재계회의는 올해 10월 11일 31회째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미재계회의 한국 측 위원장은 공석이다. 2013년부터 위원장을 맡은 조 전 회장이 지난 4월 작고한 뒤 6월께부터 허 회장이 임시 위원장직을 맡고있다.
한국 측 새 위원장은 내년 초 전경련 회장단 내부 회의에서 추천 받은 뒤 후보가 수락하는 방식으로 추대될 예정이다. 회장단은 허창수 회장과 권태신 상근부회장을 포함해 13명 규모다. 위원장 임기는 없다.
미국 측 위원장 역시 내부 추천과 수락 방식으로 선출된다. 현재 미국 측 위원장은 7대인 데이비드 코다니(David Cordani) 시그나그룹 회장이다. 다국적 보험・헬스케어 기업인 시그나그룹은 한국 법인으로 라이나생명을 두고 있다.
한미재계회의 위원장과 전경련 회장직을 겸한 사례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이후 처음이다. 다만 조 회장은 한미재계회의 위원장을 역임하던 중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돼 현재와는 상황이 다르다.
역대 한미재계회의 한국 위원장의 면면을 보면 그 무게가 남다르다. 초대 위원장인 고(故) 남덕우 한미경제협의회 회장(임기 1988~1991년)은 한국 경제 성장기 이론적 기초를 낸 서강학파의 대부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시절인 1969년 박정희 정부 재부무 장관으로 입각했다. 이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대통령 경제담당 특별보좌관 등을 지냈다. 내수 부족을 수출장려 정책으로 전환해 무역 강국으로 거듭나는 데 공로가 크다는 평가다.
2대 위원장 고(故) 구평회 회장(1991~2000년)은 LG그룹 창업과 성장의 주역으로 기억된다. 호남정유 사장과 LG상사 회장 등을 지내며 외자도입을 통한 민간해외합작사업을 개척했다. 한국무역협회장이던 1994~1999년 코엑스(COEX) 건립과 아셈(ASEM) 정상회의 개최 등으로 한국 컨벤션 산업과 무역업계 발전의 초석을 세웠다.
이후 위원장직은 재계 22위 효성그룹 총수 조석래 회장(2000~2009년)과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2009~2013년)을 거쳐 5대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2013~2019년)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조 전 회장은 수송보국(輸送報國) 일념으로 대한항공을 오늘날 세계 주요 항공사로 키워냈다. 그는 1996년 항공업계의 유엔(UN)으로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업계 내 한국 기업 발언권을 확대했다. 2000년 델타·에어프랑스 등과 국제 항공동맹체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해 대한항공을 세계적 항공사 반열에 올렸다. 2009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으로 2년 가까이 50여차례 해외 출장 다니며 지지를 호소해 유치에 성공했다.
한미재계회의 한국 위원장은 실무진의 주요 업무보고를 받고 매해 10월 열리는 한미재계회의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내야 하는 자리다. 조 전 회장 시절인 지난해에는 양국 재계가 관세폭탄으로 불리는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를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적용하지 말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차기 위원장은 트럼프 정부 관세 폭탄 방어에 적합한 인물이 최우선으로 선택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경련은 올해 허창수 회장 4연임을 결정하는 등 새 인물 찾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한미재계회의 한국 위원장 역시 사상 첫 장기 겸임체제를 이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한미재계회의를 양국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주재하고 필요시 분과위원회 회의도 열기 때문에 상징에 그치는 자리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측 위원장이 겸직 체계지만 실무진 소속이 전경련이므로) 올해 한미재계회의도 문제 없이 준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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