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 국가 일본'의 몰락...'일본화' 공포에 떠는 세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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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회 기자
입력 2019-09-0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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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低인플레·금리, 高부채 등 일본화 전조 확산

  • 일본은행 실험적 통화부양책 "백약이 무효"

  • "재정확대, 구조개혁 등 정치적 결단 있어야"

'일본화(Japanification)'라는 유령이 세계경제를 괴롭히고 있다. 일본이 30년째 겪고 있는 장기불황의 조짐이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일본 정도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다. 역대 최장기 성장세를 뽐내고 있는 미국도 침체 공포에 휩싸였다. 
 

에즈라 보겔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1979년에 낸 '일등 국가 일본' 표지[사진=아마존 웹사이트 캡처]


◆'일등 국가 일본'의 몰락

일본 경제는 1980년대 최대 호황을 누렸다. 경제지표와 더불어 주식, 부동산 가격이 하늘을 찌르는 사이 일본 기업들은 미국 경쟁사와 랜드마크 부동산을 사들였다. 이미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일본의 부상은 미국을 위협할 정도였다. '일등 국가 일본(Japan as Number One)'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을 정도다. 에즈라 보겔 미국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1979년에 쓴 이 책의 부제는 '미국에 주는 교훈'이다.

보겔은 불과 10년 만에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도쿄증시 간판지수인 닛케이225가 1989년 12월 29일 3만8915선에서 최고점을 찍더니, 이듬해부터 수직낙하하기 시작했다. 지수는 여태껏 한 번도 30년 전 고점을 회복하지 못한 채 2만 선에 머물러 있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 자산거품이 터지면서 디플레이션, 장기불황 수렁으로 빨려들었다.

◆일본화 전조① 低인플레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의 일본화 전조 가운데 하나로 저인플레이션을 꼽는다. 저인플레이션은 물가상승률이 낮은 걸 말한다. 물가상승률이 계속 떨어져 마이너스(-)가 되면 디플레이션이 된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현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물론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들은 하나같이 낮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는데도,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한참 밑돌고 있어서다. 돈을 많이 풀면 돈값이 떨어져 물가가 오르는 게 보통이다. 경기 회복세로 물가인상 기대감이 커지면 소비가 늘어 경기에 더 힘이 실린다. 반대로 물가상승세가 더디거나, 심지어 물가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소비위축 요인이 된다.
 

1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 추이(단위: %)[그래픽=FRED]


◆일본화 전조② 低금리

또 다른 일본화 전조는 저금리다. 1990년대 일본 경제가 휘청일 때 이 나라 국채에 매도 베팅을 걸었던 헤지펀드들은 결과적으로 큰 손실을 봤다. 일본 국채 가격이 오히려 올라 금리가 추락한 것이다. 1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는 1990년 9월 8%를 넘은 뒤 급락세로 기울었다. 1998년 10월에는 1%,  급기야 2016년에는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이후 0% 선에서 등락을 거듭한 금리는 최근 마이너스 영역에서 사상 최저 수준에 있다.

채권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만기 때 그만큼 손실을 봐야 한다. 그럼에도 국채에 돈이 몰리는 건 경기가 불안할 때 믿을 수 있는 안전자산이기 때문이다. 금리가 더 떨어지면(국채 가격이 오르면) 유통시장에 팔아 자본이익을 챙길 수도 있다. 글로벌 침체 우려 속에 일본은 물론 미국, 독일 등 다른 주요국 국채 금리가 계속 추락하고 있는 이유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마이너스 금리로 거래되는 채권이 약 16조 달러어치, 전체의 30%가 넘는다. 일본이 이 중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독일과 네덜란드 국채는 전량이 마이너스 금리로 거래된다.

◆일본화 전조③ 高부채

일본 경제의 거품이 터진 뒤 헤지펀드들이 이 나라 국채에 등을 돌린 건 무엇보다 국가재정이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일본 재정수지는 1980년대 호황 덕에 흑자 반전을 이뤘지만, 1990년대 초 다시 적자로 기울어 반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쌓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1990년 67%에서 지난해 238%로 주요국 가운데 최고가 됐다. 일본 정부가 줄어든 GDP를 부채(국채 발행)로 메운 결과다. 일본의 국채 발행 잔액은 지난 30년간 6배 가까이 늘었다. 일본 정부가 급격히 부채를 늘린 건 일본은행(BOJ)이 만들어준 초저금리 환경 때문이었다. 국채 매입에 적극적인 일본 투자자들의 보수성도 한몫했다.
 

일본(막대, 왼쪽)·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단위: %)[그래픽=트레이딩이코노믹스]


◆전문가들 "강력한 정치적 대응 나서야"

전문가들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주는 교훈은 중앙은행이 도입한 온갖 부양책이 듣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BOJ는 제로금리, 양적완화, 마이너스 금리 등 실험적인 통화부양책을 잇따라 도입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만든 초저금리 환경이 시장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실상 현재 진행형인 다른 주요 중앙은행들의 금융위기 대응책도 마찬가지다.

리사 샬렛 모건스탠리 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저금리나 마이너스 금리는 중독성이 있다"며 "매우 무서운 일이다. 일본은 아직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고 세계는 매우 위태로운 상태"라고 경고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들의 부양 여지가 바닥난 상황에서 일본화에 맞서려면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 구조개혁 등 일본이 취한 것보다 더 급진적인 정치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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