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트럼프노믹스와 연준의 심각한 독립성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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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19-09-0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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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교수]



미국에서 2009년부터 시작된 역사상 가장 긴 호황이 끝나가고 있다는 징후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2007년 6월 이후 처음으로 지난 8월 14일 10년 만기 미국 국채의 이자율이 2년 만기 국채 이자율보다 낮아지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등장하였다.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 원인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무역전쟁 이후 부과된 관세가 기업의 투자와 개인의 소비를 줄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평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는 무역전쟁이 아니라 작년 네 차례의 금리 인상이 경기 침체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는 최근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은 연준의 금리 수준 때문에 달러화가 강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위대한 제조업체들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 작년 금리 인상으로 미국과 독일의 금리 격차가 더 벌어졌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 완화 정책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의 실질 금리는 마이너스이다. 이러한 금리 차이는 환율에 영향을 미쳐,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고 있다. 달러화 강세로 인해 미국산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낮아져, 트럼프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있는 수출이 예상과 달리 증가되지 않고 있다.

연준이 8월 1일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하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은 약화되지 않고 있다. 그는 무역전쟁의 상대인 중국보다 연준이 미국 경제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더 과감한 금리 인하를 촉구하였다. 통화정책에 대한 불만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유례없는 인신공격으로 이어졌다. 그는 8월 23일 트위터에 “제이 파월과 시진핑 주석 중 누가 더 큰 적인가?”라는 질문까지 제기하였다.

같은 날 열린 잭슨홀 회의에서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완곡하게 거절하였다. 먼저 그는 무역전쟁으로 발생한 ‘무역정책 불확실성’이 전 세계적 차원의 경제 성장 둔화 및 미국 내 제조업 투자 부진을 초래하였다고 지적했다. 즉 경기 침체의 원인이 금리 인상이 아니라 무역정책에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무역정책이 연방 정부와 의회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무역전쟁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분명하게 밝혔다.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8월 27일 블룸버그 기고문을 통해 파월 의장의 입장을 옹호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신공격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 성장에 필요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무역전쟁의 여파로 경기가 침체될 경우에도 연준이 금리를 내려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연준이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해 놓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더 격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무역정책에 대해 잘못된 선택을 계속하는 행정부를 구제해서는 안 되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 행동에 대한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아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즉 연준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 이후 경기 침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통화정책을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의 갈등은 정치적 경기순환과 중앙은행 독립성의 대립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호황 국면이 지속되어야만 한다. 취임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트럼프노믹스의 성과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감세 정책으로 국가부채가 급증하는 문제가 있지만, 2017년 4/4분기-2018년 4/4분기 경제성장률이 2005년 이후 가장 높은 3.1%, 실업률도 2019년 6월 1969년 이후 역대 최저인 3.7%를 기록했다. 그러나 무역전쟁의 피해가 거시경제 지표에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성과가 점점 퇴색되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침체를 선거 후로 지연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선거를 위해 호황과 불황의 시기를 조작하는 정치적 경기순환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파월 의장은 통화정책 결정과정에서 정치권의 압력으로부터 최대한 독립성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성장과 고용이라는 본연의 경제적 목표보다 대통령과 집권당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정치적 고려를 우선할 경우, 경기순환이 선거주기에 연계되어 통화정책은 물론 거시경제정책 전반이 왜곡될 수 있다.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요한 금리 인하 요구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중앙은행제도를 발전시켜온 연준의 위상을 이미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 대응을 자제해온 파월 의장의 의지와 관계없이, 연준은 이미 차기 대선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어 버렸다. 연준의 독립성은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약화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경우 파월 의장을 해임하고 자신의 지지자들로 이사회를 재편할 것이다. 반대로 실패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연준의 비협조로 선거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계속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준이 세계의 중앙은행으로 군림해왔기 때문에 연준의 독립성 훼손은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도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 재정적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까지 약화된다면, 달러화 가치와 위상이 지금보다 하락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또한 1997년 아시아금융위기, 2007년 글로벌금융위기와 같은 세계적 위기가 도래했을 때, 대통령으로부터 전권을 보장받지 못한 연준이 세계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국제적 정책협조를 주도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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