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하이브리드角] 이회창과 조국, 격물치지(格物致知)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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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획에디터 부국장
입력 2019-09-2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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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스무 살 아들이 펑펑 울었던 얘기를 하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제 애는 비록 공부를 잘 못해 대입 재수를 했지만 정말 건강했어요. 당연히 가고 싶었던 군대를 갈 줄 알았는데 신체검사에서 몸에 큰 이상을 발견하고 면제 판정을 받았어요. 곧바로 수술을 했는데, 수술실에서 나온 그 녀석이 ‘나는 군대도 못 가는 비정상’이라며 얼마나 펑펑 울던지···.”

갑자기 분위기 싸해진(갑분싸) 상황에 “아이고, 아빠 대통령 못하게 해서 죄송했나 봐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웃음이 빵 터졌고, 대화는 1997년 12월에 있었던 15대 대통령 선거 얘기로 이어졌다.

1997년 7월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후보가 된 이회창 전 총리는 당장 선거를 하면 바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할 정도로 그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선거 과정에서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DJP 연합’을 꾸렸던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한 뒤 뛰쳐나온 '젊은 제3의 후보'였던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도 상대가 되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장성한 두 아들이 체중 미달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의혹이 터졌다. 이회창 후보는 “그 어떤 법적 하자가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럼에도 여론이 싸늘해 지지율이 급전직하하자, 큰아들은 스스로 한센병 환자들의 천국인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 유학 중인 작은아들은 불러들여 서울대병원에서 공개 신체검사를 받게 했다.

소록도와 서울대병원을 직접 찾아 당시 상황을 취재했던 정치부 초년병 기자였던 필자는 ‘연좌제는 사라졌지만 자식 문제가 대통령을 만들 수도, 못 만들 수도 있겠구나’라고 직감했다.

12월 18일 선거 최종 득표율은 이회창 38.7%, 김대중 40.3%, 이인제 19.2%였다. 1.6% 포인트 차이로 헌정 사상 직접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그렇게 이회창 후보는 대통령 첫 도전에 실패했다.

이회창씨가 다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던 2002년 16대 대선 때는 난데없이 군병원 행정업무 담당 부사관 출신인 김대업씨가 “1997년 7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장남의 병역 비리 은폐를 위한 대책회의가 열렸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른바 병풍(兵風)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허위사실 유포로 실형을 받고 복역했다.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이 각각 179㎝에 45㎏, 165㎝에 41㎏, 둘 다 체중미달로 병역을 면제받은 의혹은 두 번의 대선에서 무시무시한 영향을 미쳤지만 결국에는 김대업이라는 사기꾼 때문에 무혐의 처분을 받은 셈이다.

2017년 나온 이회창 회고록에는 그 당시를 이렇게 적고 있다. “이 병풍 사건을 돌이켜보면 내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미숙하고 어리석었던가. 나나 당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대비가 없었다. 두 아들 모두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혹을 살 만하고 상대방인 새정치국민회의가 볼 때는 이런 호재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병역면제 과정에 아무런 위법이 없었으므로 그들이 이를 문제화해봤자 잠시 시끄럽겠지만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이렇게 '나이브'했던 이회창의 두 아들 이후 자녀 문제는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를 판단하는 중요 기준이 됐다. 특히 인사청문회가 모든 장관 이상 고위직에 확대된 2005년부터 자녀의 이중국적이나 외국국적, 입시비리, 병역비리, 채용비리 등이 문제돼 사퇴하거나 임명을 철회했던 경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회창 후보의 아들들이 문제가 된 1997년 이후, 2019년 대한민국은 조국 법무부장관 아내와 딸의 입시, 재산을 둘러싼 의혹, 이른바 ‘조국 파문’에 휩싸여 있다. 이 22년 동안 집안을 가지런히 한다는 ‘제가(齊家)’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장대환 총리 후보자는 자녀를 위한 강남 8학군 위장전입,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지명자가 이중국적자 아들의 부동산 문제로 3일 만에 물러났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자녀 이중국적 문제로, 신재민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는 무려 5차례의 위장전입 의혹으로 결국 버티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김용준 초대 총리 지명자를 최단기(5일) 총리 후보로 만든 이유도 아들의 병역 문제였다.

‘제가’가 나오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는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의 핵심 구절이다. 유교의 이상적인 인물인 선비의 조건을 적시한 것이다. 먼저 자신을 수양해 바르게 가다듬은 후 가정을 돌보고, 그 후 나라를 다스리며, 그런 다음 천하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신제가에 앞서는 구절에 대해 사람들은 잘 모른다.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이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은(격물) 후에 앎에 이르게(치지) 된다. 알게 된 후에 뜻이 성실(성의)해진다. 성실해진 후에 마음이 바르게(정심) 된다. 그 다음부터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다.

사상 초유의 법무부 장관 자택 압수수색까지 벌인 검찰은 조국 장관의 ‘제가’를 먼지 털듯 수사하고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랬던 검찰이라는 권력은 ‘검사동일체(검사는 한 몸)’ 원칙으로 똘똘 뭉쳐 스스로 ‘격물치지’하는 모양새다.

모든 것을 알고 못하는 게 없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하며 ‘격물치지’한다고 자신하는 검찰이 있는 한 그 어느 누구도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할 수 없다.

‘검사내전’을 쓴 김웅 검사를 비롯해 적지 않은 검사들은 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김 검사는 “거악을 일소하지는 못하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큰 배의 나사못 역할이나 제대로 해보자고 선의를 불태웠던 다짐”을 회상한다. 검찰에 더 많은 ‘나사못 검사’들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어쩌다 보니 일반 회사와 다를 게 없는 검찰에 들어와 검사가 된 생활형 검사”라고 말하는 김웅 같은 검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취임 후 인사에서 사법개혁의 청사진을 그려온 김웅 대검찰청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을 한직인 법무연수원 교수로 좌천시켰다. 검찰 개혁이 쉽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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