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전통적인 TV는 20년 이내에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 그것이 현실화돼 가고 있습니다."
주정민 제31대 한국방송학회장(전남대학교 교수)은 1일 본지와 만나 국내 방송‧미디어 산업이 직면한 위기 상황을 우려하며 이같이 말했다.
모바일 중심의 디지털시대가 도래하면서 넷플릭스, 유튜브와 같은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이 미디어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지상파와 유료방송을 통해 뉴스나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다.
주 학회장은 전통적인 방송‧미디어 역할이 축소되면서 결국 우리 사회의 공공성 영역을 무너뜨리고 허위조작정보로 가득한 '가짜뉴스' 논란을 키웠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나라 방송‧미디어 산업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 맞춰진 규제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글로벌 OTT와 형평성 있는 경쟁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정민 제31대 한국방송학회장(전남대학교 교수)은 1일 본지와 만나 국내 방송‧미디어 산업이 직면한 위기 상황을 우려하며 이같이 말했다.
모바일 중심의 디지털시대가 도래하면서 넷플릭스, 유튜브와 같은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이 미디어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지상파와 유료방송을 통해 뉴스나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다.
주 학회장은 전통적인 방송‧미디어 역할이 축소되면서 결국 우리 사회의 공공성 영역을 무너뜨리고 허위조작정보로 가득한 '가짜뉴스' 논란을 키웠다고 진단했다.
-방송학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과거 방송 하나로 시작해 지금은 방송‧통신‧콘텐츠까지 포괄한 뉴미디어를 연구하고 있다. 1000여명의 회원들이 이론적‧실용적 논의를 통해 산적한 방송‧미디어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 일반적인 학회와 다르게 현업 종사자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한다. 매해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정기학술대회를 진행하며 현실적인 대안을 이끌어내고 있다. 제주도에서 진행된 지난 봄 학회에서는 관련 논문이 100여편 정도 발표됐다. 오는 11월 9일 한양대학교에서 열리는 가을 정기학술대회에서도 재밌는 논문들이 나올 것 같다."
-취임 이후 가장 중요하게 지켜본 방송미디어 산업 이슈는.
"모바일 중심의 OTT가 활성화되면서 전통적인 방송‧미디어, 흔히 레거시 미디어라고 하는 지상파가 어려워지고 있다.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광고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결국 콘텐츠 투자 여력이 없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상파 방송이 현재 위상을 얼마나 유지할지 불투명하다. 지상파의 평균 시청률은 4%도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지상파 평균 시청률이 2000년대 초반 10%대였으나 20년이 지난 현재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최근 이런 추세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전체 시장에서 지상파의 역할이 위축되고 방송산업이 어려워질 것이다. 방송산업에 진출하려던 인력들도 갈 곳을 잃게 된다. 현재 학회의 가장 큰 고민은 위축되고, 약화된 방송 산업을 활성화시킬 방안을 찾는 것이다."
-글로벌 OTT의 공세가 지속되고 있는데, 국내 방송 사업자들이 위기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내 사업자들이 시장 변화‧기술 변화‧이용자 변화라는 세 가지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게 위기를 자초했다. 모바일과 인터넷에 적합한 콘텐츠 프로그램을 만들기보다는 TV방송에만 적합한 콘텐츠 제작에 치중해오고, 모바일 기기를 통한 콘텐츠 유통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지상파는 아이디어 경쟁보다 제작비‧스타 경쟁에만 치중해왔다. 모바일 문법에 맞는 짧고 유쾌한 콘텐츠, 정보적 가치를 담는 콘텐츠를 별도 기획을 통해 생산해야 하는데, 자기들이 그동안 만들었던 콘텐츠를 모바일로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안일하게 대처해왔다. 답이 나오지 않는다."
-토종 OTT의 부흥을 꿈꾸며 지상파-SKT, CJENM-JTBC의 합종연횡이 이뤄지고 있다. 어떻게 전망하는가.
"옥수수와 푹이 결합해 ‘웨이브’가 출범했는데, 콘텐츠 경쟁력은 있다고 본다. 문제는 비싼 이용료다. 동남아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는데, 동남아 국가의 경우 생활수준이나 소득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낮기 때문에 가격을 10분의1 정도로 내려야 한다. 동남아시아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말레이시아 토종OTT 아이플릭스는 1달러 수준에 서비스되며 성공을 거뒀다. 국내에서는 웨이브가 유튜브처럼 무료와 프리미엄 투트랙 서비스로 가야 한다. 무료는 오픈 플랫폼으로 제공해 사람들이 콘텐츠를 올리고 수익이 나면 적절한 광고배분을 해줘야 한다. 유튜브보다 높은 광고배분을 해줘야 한다. 프리미엄에서는 유료 선오픈 후 무료로 전환하는 방식도 할 수 있다. 국내 OTT는 한류 콘텐츠가 있기 때문에 충분한 승산이 있다. 다만 여러 OTT를 병행할 수 있도록 가격을 3000~5000원으로 낮추지 않으면 현재 가격구조로는 목표인 2023년 500만 가입자 달성은 절대 불가능하다."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려면.
"핵심은 가격과 차별적인 콘텐츠이지만, 추가 요인은 얼마나 개인에게 최적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있다. SK텔레콤이 보유한 5G(5세대 이동통신),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술들을 활용해서 유튜브나 넷플릭스보다 진화한 맞춤형 프리미엄 서비스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통신과 방송의 결합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콘텐츠 아이디어가 많은 젊은 인력들을 영입하고, 웨이브는 자본을 지원하는 방향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콘텐츠가 수익이 나면 다시 셰어하는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본다."
-OTT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규제 개선 방향은.
"OTT 규제의 딜레마는 국내외 사업자 간 역차별이다. 국내 사업자들은 해외 사업자 중심의 OTT를 방송법에 포함시켜 규제를 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로 국내 방송 사업자들이 OTT로 진출하고자 할 때 규제를 받게 된다는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 방송 사업자들이 경쟁력을 갖고자 한다면 규제완화가 필요하다. OTT는 기본적으로 인터넷 서비스다. 방송이라는 규제의 틀을 적용하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가능한 한 규제보다는 기존의 방송법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낫다고 본다. 현재의 위험성 때문에 OTT를 규제하면 장기적으로 자기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인터넷 기업은 서버가 있는 곳이 사업장이기 때문에 글로벌 OTT에 대한
국내법 적용이 어렵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규제하지 못하는 이유다. 방송법에 묶어두려고 해도 결국 국내 OTT만 규제하는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학회에서 의견수렴을 거친 결과 OTT 규제는 피하자는 쪽이 다수의 의견이다. 차라리 기존 방송법 규제를 완화해 수평적 규제체계를 만들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운다. 예를 들어 편성의 규제, 광고의 칸막이식 규제와 같은 콘텐츠 제작에 제약을 주는, 아날로그 시대에 만든 방송법 규제를 과감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 신임 한상혁 위원장이 취임했다.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아날로그 시대 방송법규나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또한 다양성과 균형 잡힌 사회를 위한 측면에서 지역방송, 종교방송, 장애인방송과 같은 소수 취약계층에 대한 콘텐츠 지원 활성화에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본다. 방송 산업이 어려워지면서 뉴스가 상업화돼 가고, 시청률 경쟁·클릭 경쟁으로 치우치면서 정제되지 않은 정보들이 유통되고, 검증되지 않은 콘텐츠들이 범람하면서 공공성이 훼손돼 가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은 전통적으로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미디어시장의 견제장치 역할로 남아 있어야 한다. 영국은 BBC처럼 공공방송 영역이 시대흐름과 관계없이 전통과 가치를 유지하며 정보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대만은 공영방송이 상업방송과 경쟁하는 시스템이 되면서 방송시장이 붕괴됐다. 우리나라 공영방송도 상업화되면서 위험에 노출돼 있다.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로는 공영방송법을 별도영역으로 떼어서 공영방송 고유의 임무를 부여하고, 수신료를 안정적으로 지원해주는 등의 정책적 재정립이 필요하다."
-가짜뉴스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학자로서 어떻게 바라보는가.
"‘가짜뉴스’ 용어 사용을 조심해야 한다. 뉴스에는 가짜와 진짜가 없다. 허위조작정보는 존재할 수 있다. 미디어가 뉴스를 배포한 이래로 가짜뉴스와 허위조작정보에 관한 논란은 항상 있어왔다. 사회가 건전하고, 정제되고 검증된 정보를 제공하는 미디어가 견고하게 존재하는 시장은 가짜뉴스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통 방송‧미디어들이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가짜뉴스가 확산된 것이다. 개인들이 마음대로 정보를 생산·유통하는 구조가 된 것도 불씨를 댕겼다. 뉴스 유통 플랫폼인 네이버, 유튜브 같은 사업자들이 팩트체크 시스템을 만들어 자율 정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민사회 단체 쪽에서는 적극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정보 이용자들은 ‘미디어 정보의 해독능력’, 즉 리터러시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다. 단,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규제를 한다는 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언론 스스로 능력을 키워 자정 작용을 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남은 임기동안 계획은.
"규제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 8월 27일 지상파, 유료방송, 피피, 종편, 홈쇼핑이 참여한 가운데 방송산업이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의견을 수렴했다. 오는 10월 11일 규제개혁대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의견을 종합해 최종적으로 가을 학술대회에서 최종보고서로 발간할 예정이다. 정부가 규제개혁을 못했던 배경에는 사업자들 간 이해관계 조정의 해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회가 공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방송 콘텐츠 활성화와 산업 발전을 위해 규제 완화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