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조원의 부동자금이 투자처를 잃고 헤매고 있다. 국내 경기의 3저(低) 현상이 심화되고 수출·투자 개선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시중에 자금이 넘쳐나고 있다. 특히 저금리로 인해 금융시장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자금은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는 기형적 쏠림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시중 부동자금(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약 983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자금 순환도를 보여주는 통화승수(한은이 공급한 돈이 경제현장을 돌면서 창출하는 통화량의 배수)는 상반기 15.7을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는 그만큼 시중에 자금은 충분히 풀려 있지만 실제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5만원권 미환수액도 100조원을 넘어섰다. 8월 말 5만권원 발행잔액(미환수액)은 100조2306억원으로 전달보다 1조3414억원 증가했다. 발행잔액은 한은이 발행한 화폐 중 한은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고 시중에 남아 있는 돈의 양을 가리킨다.
월별로 살펴보면 지난달 5만권원 미환수액의 증가세가 뚜렷하다. 지난 1~7월 환수율이 70%가 넘었던 반면, 8월에는 환수율이 42.2%에 그쳤다.
저금리 기조 속 파생상품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현금 보유 심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경제성장률뿐 아니라 기업 이익 추정치가 추가 하향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투자 심리는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금리가 내려가면서 투자처를 잃은 시중의 부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갈 가능성만 높아졌다는 데 있다.
실제로 부자들 총자산의 절반 이상은 부동산이었다.
최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억원 이상 금융자산을 가진 '한국 부자'들의 총 자산 비중은 부동산자산 53.7%, 금융자산 39.9%이다. 부동산자산 비중은 이전부터 꾸준히 50%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지만, 금융자산 비중은 5년 만에 처음으로 40% 아래로 떨어졌다.
장기적으로 수익이 예상되는 유망 투자처 1~3위로 빌딩·상가, 거주 외 주택, 거주 주택 등 모두 부동산이 차지했다. 금융투자를 늘리겠다는 답변은 10% 이하인 반면, 거주 외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는 21.5%로 2배가량 높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주식시장이 지지부진하고, DLF 불완전판매 논란이 증폭되면서 투자처를 잃은 시중 부동자금이 크게 늘고 있다"며 "최근 파생결합상품(DLF, DLS) 사태로 대규모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서 기존 투자 상품에 몰렸던 자금까지 이탈해 사실상 부동산 외에는 투자처가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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