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버티고' 천우희 "멜로, 왜 진부하다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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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9-10-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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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천우희(31)는 언제나 치열한 삶을 그려왔다. 영화 '한공주'를 시작으로 '카트' '해어화' '곡성'을 지나 최근작 '우상'에 이르기까지. 줄곧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물을 연기해왔다.

지난 17일 개봉한 영화 '버티고'(감독 전계수)는 그의 전작과 닮지도, 다르지도 않은 묘한 인상을 남긴다.

고층 건물 안에서 추락의 공포를 느끼는 여자와 빌딩 숲을 유영하는 로프공의 이야기를 다룬 멜로 드라마는 천우희가 그간 보여주지 않은 장르·​연기지만, 위태롭고 치열한 삶을 사는 인물의 면면은 그가 연기한 캐릭터와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멜로 드라마라는 장르 안에서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선영의 모습은 낯설면서 동시에 친숙하다. 이 기묘한 질감은 앞으로 천우희가 보여줄 새로운 시도, 변화의 시작 아닐까.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버티고' 주인공 천우희의 일문일답

영화 '버티고' 선영 역의 배우 천우희[사진=나무엑터스 제공]


천우희 필모그래피에서 드문 멜로 장르였다
- 그렇긴 하지만 멜로가 중점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연인에게 상처받고 새로운 사람을 만다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한 인물이 겪는 상황이나 이야기라고 여겼다.

인물이 겪는 고통은 전작들과 다를 바 없지만, 장르-연기적인 부분에서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 주변에는 '본격 성인연기다'라고 말했었다. 이전에는 나이가 보이지 않거나, 제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도 저를 나이보다 어리게 보곤 했다.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지만 성숙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

오피스룩도 입어보고, 직장생활도 해봤는데
- 맞아. 오피스룩도 입어봤다. 하하하. 새로운 것에 관한 기대도 있었다. 주변 분들이나 관객들도 그런 부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버티고' 속 천우희는 어딘가 유영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 그런 느낌이 나길 바랐다. 바람 불면 함께 떠밀려 갈 거 같은 인상.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말이다.

영화 '버티고' 선영 역의 배우 천우희[사진=나무엑터스 제공]


덜어내는 작업이 필요한 캐릭터였다
- 제 나름대로는 응축과 분출, 두 가지 모두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두 연기 다 쉽지 않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해낼지 작업하며 찾아가고 있다. '버티고'의 경우 서사에 기댈 수 있는 게 아니라 감정에 기대기 때문에 기교를 부려서는 안 되다고 생각했다. 인물로서 존재하고 있으면 그걸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어디 하나 기댈 데가 없더라. 기교보다 진심을 담아냈고 한 신 한 신을 만들어갔다. 내적으로 (감정을) 안고 있으면 그 안에서 미세한 근육이나 시선으로 표현될 거라 믿었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부터 '버티고'까지, 연달아 멜로 장르를 선보이게 됐다
- 사실 멜로 장르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다른 이야기가 재밌고,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에 관심이 많이 갔었는데, 이제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더라. 연기자 선배님들도 '네 나이에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조언해주셨다. 그러다 보니 두 작품 연달아 멜로 장르를 연기하게 된 거 같다.

연기자 선배들의 조언에 관해 조금 더 얘기해달라
- 한석규 선배님과 '우상'을 찍고, 연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선배님이 워낙 영화를 좋아하시고 제 작품을 다 봐주셨기 때문이다. 선배님께서 '멜로가 가능할 때 많이 하라'며 '사랑은 중요하다'고 했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장르는 멜로라고. 그 말이 와닿았다. 가장 소중한 건 사랑인데 왜 나는 그동안 그걸 진부하다고 여겼을까?

앞서 말한 것처럼 '멜로가 체질' '버티고'는 30대의 인물이었다
- 갓 서른을 넘은 시점에서 청춘을 연기한다는 것에 관해 재밌게 생각하고 있다. 그 청춘을 제 얼굴로 표현한다는 것도. 두 작품 모두 색깔이 너무 다른데 어떤 분들은 진주('멜로가 체질')가 더 자신 같고, 어떤 분들은 선영('버티고')가 더 자신 같을 거라고 본다. 두 가지 다 표현하게 돼 감사할 따름이다.

영화 '버티고' 선영 역의 배우 천우희[사진=나무엑터스 제공]


실제 30대이기 때문에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거나, 남들보다 예리하게 포착하는 감정도 있었나?
- 특수한 상황이나 감정이 아니라 그걸 대하는 지금의 자세라고 해야 할까. 30대는 20대보다 뭔가를 이뤄야 하고, 자리를 잡아야 하고, 능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렇지 않으니까. 경력이 쌓였지만 미숙하기도 하고 사람을 대할 때도 어정쩡하다고 본다. 그런데도 사회적으로 너무 많은 걸 요구받고 있고. 그런 압박감, 불안감이 저변에 깔려 있는데 해결하고 제시하는 것보다 제 모습을 보여주면서 공감받기를 바랐다.

30대의 천우희는 어떤가?
- 지금도 청춘인데. 하하하. 어디에서는 30대더러 어른이라 하고, 어디에서는 늙었다고 하고. 어디에나 낄 수 없는 어중간한 나이 같다. 그래서 좋기도 하다. 어중간해서 다 할 수 있으니까!

'버티고' 선영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 천우희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나?
- 꽤 많다. 저는 제 작품이 아쉬울 때도 있고 애증처럼 미울 때도 있는데 팬들은 그렇지 않더라. 가끔 팬레터를 읽으면 제 작품과 연기로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고 하는데 엄청난 감동이 몰려온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좋아할까?' 싶다. 때마다 힘이 나고 일에 대한 의미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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