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25일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1회 기일을 열고 뇌물공여 재발 방지와 총수로서의 역할을 고민하라고 당부했다.
재판부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 이건희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고 이른바 ‘삼성 신 경영 선언’을 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느냐 (생각해보라)”는 질문으로 기일을 마쳤다.
첫 공판을 마친 이 부회장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차량에 올랐다. 앞서 법정에 들어설 때는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등기이사 임기 만료에 따른 경영 계획 변화와 삼성 오너리스크 우려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올해 이 부회장은 3세 경영의 신호탄을 쐈다. 지난 4월 133조원 투자로 비(非)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목표를 천명하고 8월 대법원 선고 전후로 현장 경영에 신경 썼다. 일본 무역보복에 대응한 현지 출장과 사장단 회의, 국내 사업장 방문, 사우디아라비아 지하철 공사 현장 방문 등으로 회사 내외부를 관리했다.
지난 10일에는 충남 아산 소재 삼성디스플레이 탕정공장에서 열린 신규투자 및 상생 협력 협약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응원을 받기도 했다.
법원이 물어본 이 부회장의 선언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재판부는 기업 총수와 최고위 임원이 가담한 뇌물 범죄 재발을 막아줄 실질적・효과적인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통령도 뇌물 수뢰를 두려워할 정도의 사내 감시 수단이다.
공정 경쟁을 가로막는 재벌 체제 폐해 극복은 물론 기업 전체를 뜯어고친 아버지의 혁신 경영도 과제로 거론됐다.
이 부회장은 재판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예”라고 답했다. 이날 재판부의 당부에 대한 진짜 대답은 향후 최후 변론에 담길 전망이다. 그는 2017년 12월 항소심 최후 변론 때 “이병철 손자나 이건희 아들이 아닌 선대 못지 않은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힘을 빌려 총수가 되려는 생각이 없었다는 항변이다.
그는 경영과 재판이라는 투 트랙 일정을 소화하며 울림있는 변론도 준비해야 한다.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대한 뇌물 공여 유무죄 판단은 내려졌다. 향후 파기환송심은 유무죄보다는 형량 낮추기 싸움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유무죄 심리기일은 11월 22일, 양형 심리기일은 12월 6일 진행된다.
이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은 연말까지 든든한 총수의 면모와 삼성의 혁신을 보여줄 계기 마련에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날 당부가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상 참작으로 형을 줄여주는 작량 감경은 재판부 심증의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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