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베트남 호찌민에서 만난 중견기업 호아씬은 도유탄이라는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회사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호아씬은 베트남에서 종합상사의 본원적 기능인 유통·트레이딩 사업은 물론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가전, 뷰티, 레저, 제약·바이오·헬스케어 등 사업다각화를 통해 지속 성장하고 있다.
도유탄 대표는 "베트남 여성은 비즈니스 상담을 까다롭고 난감하게 만드는 대신에 모든 계약조건을 확실하게 정리하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사장이 남성인 경우에 사장의 ‘보스’인 부인에게 협상의 확인을 받아야 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고 말했다. 여성리더의 약진은 이처럼 베트남에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베트남이 겪어온 끊임없는 전쟁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약소국가였던 베트남은 수천년간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다.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가면 자녀들의 양육과 교육문제 등을 비롯한 집안의 모든 대소사들이 여자들 차지가 된다. 이런 베트남의 독특한 역사는 부녀자들의 역할이 강조되고 대대로 학습될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성의 경제력이 커지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여풍(女風)이 중국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지난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판 포브스’ 후룬리포트를 인용, 중국 여성이 전 세계 여성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지만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사업가의 63%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기업가 3명 중 2명가량이 중국 여성인 셈이다. 후룬리포트는 중국 여성이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기업가의 대부분을 차지한 데 대해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과 중국 여성의 기업가 정신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여성기업인 환경은 어떠할까. 한국은 세계 경제 규모 11위 대국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은 창피한 구석이 많다. 정부 경제정책에 ‘여성’이란 말이 붙으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여전하다. 남성도 똑같이 어렵고 살기 힘든 세상에 왜 여성만 지원을 받느냐는 이유에서다.
한국의 여성 인구는 5000만 전체 인구의 절반이고 대학생 중에도 여학생이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비율은 남성에 크게 못 미친다. 남성 고용률이 약 76%인 데 비해 여성 고용률은 57%에 불과하다. 이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32위다. 여성이 관리자나 임원으로 성장하는 비중도 극히 낮다. 직장에서 여성 관리자 비율은 전체의 12.5%, 여성 임원은 2.3%에 불과하다.
저출산·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로서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절실하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경제성장률을 제고하고 소득불평등 개선에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는 차고 넘친다. 여성 CEO 기업을 지원하고 여성의 경제활동을 독려하는 정책은 남성을 차별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성장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의무다.
최근 마주한 정윤숙 여성경제인협회장은 "일과 가정이 양립되지 않는 사회구조적 문제와 여성창업 지원이 현실과 괴리가 있는 등의 제도적인 문제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어렵게 하고 있다"며 "여성에 대한 지원이 약자에 대한 배려 등 더 이상 '시혜적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양성평등이나 여성의 지위 향상은 단순한 체감이 아니라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나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방향성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여성기업인·여성창업 정책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며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고 있다고 한다. 지켜볼 일이다. 중기부가 '여성벤처기업부'라는 별칭을 얻으면 좋겠다는 박 장관의 바람대로, 여성인력의 활용 극대화가 경제에 활력을 북돋아 한국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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